엊저녁 아내가 사 온 오이 양이 두 식구 먹기엔 좀 벅차다. 쉬는 날, 오이김치나 담아 볼까 했더니 마늘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침 산보 겸 마늘을 사러 나간다.
이른 주일 아침, 마켓은 한산하다. 얼핏 보아 서로의 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내 또래 더는 사내랄 수 없는 사내들이 가벼운 장바구니를 채운다.
한 사내가 나를 불러 세운다. 사내나 나나 일요일 아침 게으름이 잔뜩 묻은 허름한 차림새다. 사내가 입을 뗀다.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해 주렴. 나는 진심으로 너를 환영한다. 네가 이 땅에 사는 것을 환영한다. 네가 이 땅에서 이틀을 살았건, 사십 년을 살았건, 아님 여기서 태어났건, 이방인으로 보이는 너를 환영한다. 내 선조들 누군가도 처음엔 이방인이었으므로, 내 말의 진심을 이해해 달라. 나는 이즈음 워싱톤에 있는 미치광이(트럼프)를 대신해 마주치는 이방인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있단다.”
그는 은퇴한 변호사라고 했다. “나도 너를 환영해!” 내가 사내에게 던진 말이다.
나도 지난 선거에서 트럼프만은 아니라고 했다. 허나 이즈음 헷갈리고 있다. 트럼프가 수치스런 사내에게 동조하는 마음과 한반도 뉴스 속에서 박수칠 수 밖에 없는 트럼프의 모습 사이에서 헷갈리고 있다.
11월은 곧 다가올 것이고, 이방인인 나나 이방인이었던 사내는 또 한번의 선택을 할 것이다.
돌아오는 길, 동네 어귀 밤나무 집 밤꽃들이 한창이다. 코끝에 거슬리는 밤꽃 냄새와 가을에 맞을 그 튼실한 밤톨 사이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