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무오론(無誤論)

밥이 된 사내 이야기 – 5

<성서 무오론(無誤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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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일곱 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한 교회는 교부들의 주석들로, 성서해석의 기준으로 삼으며 교회의 권위를 드높여 갔다. 교회의 권위가 단단히 세워질수록 정전화(正典化:canon)된 성서는 일 점 일 획도 잘못이 없는 책으로 규정되어 졌다. 성서 무오론(無誤論)이 확립된 것이다. 더불어 성서는 교회의 지침서 나아가 윤리 생활의 교본으로 새로운 율법책이 되어 갔다.

처음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손으로 써서 두루마리 형태로 남긴 성서는 한 두루마리에 기껏해야 한 두 권의 책의 분량을 담아 낼 수 있었다. 인쇄술에 앞서 발달된 것은 장정술(裝幀術)이었다. 오늘날의 책처럼 면을 첩첩으로 쌓는 장정술인 코덱스(codex) 방식이 개발되자 신약성서뿐 아니라 방대한 구약성서까지 한 권으로 묶어 펴낼 수 있게 되었다. 하나의 묶음집으로써 성서를 펴낼 수 있게 되자 이것을 만들고 보관하는 새로운 직업이 나타났다. “필사자”라고 불리었던 전문적 성직자들이 그들이다. 그들과 함께 발달한 것이 “필사학”이다. 기껏 베껴 쓴다는 뜻의 “필사”가 어찌 학문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그들은 단순한 필경사가 아니었다.

처음 기록된 경전들은 띄어쓰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오늘날의 장(章) 절(節) 구분은 물론 되어 있지 않았고 구두점조차 없었다. 또한 기록한 이들의 편의에 따른 약자 표시는 거의 암호에 가까웠다. 오늘날 인터넷 세대들이 쓰는 약자들, 일테면 “u” 는 ”you”이고, “brb”는 ”be right back”을 말하지만 한 세기 전 사람들에게는 암호이듯 처음 성서의 약자(略字)들은 그렇게 전해져 왔던 것이다. 띄어쓰기가 없는 문장해독은 더욱 어려운 것이었다. 일테면 “GODISNOWHERE”를 “God is now here(신이 여기 계시다)”라고 읽을 수도 있으며 ”God is no where(신은 어디에도 없다)“라고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소리의 다른 뜻을 받아 적었을 경우는 정말 난감한 경우이다. 희랍어 ”우리들(hemeis)”을 “너희들(humeis)”로 받아 적은 경우를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he와 hu는 똑같은 발음 [hi]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사자“들은 전문적 지식인이어야만 하였다.

오늘날처럼 성서에 장(章)이 구분된 것은 13세기 초기의 일이고 절(節)이 구분된 일은 16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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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 지식인으로서 “필사자”였던 성직자들에게 덧붙여진 권위가 있었으니 본문을 변형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그들은 전해 오는 여러 다른 필사본들을 비교하고 비평하며 종합하기도 하였고, 뜻이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는 낱말들을 바꾸기도 하였으며 불경스런 어투를 빼거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새로운 말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전문적 지식층이 된 필사자들은 치열한 학파적 논리싸움으로 성서를 그들만의 전유물로 삼기에 이르렀다. 먹고 살기 바쁜 무식한 보통 사람들에게 성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나 누리는 계급이 된 지식층들은 그 권위를 받들어 줄 아래 계급이 필요하였다. 그들은 무지한 보통사람들이 자신들의 고귀한 업적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그림 성서를 만들게 된다. “그림 성서” 중세 교회시대의 희화화된 모습의 단면이다.

인쇄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지던 무렵 일어난 종교개혁은 성서학 나아가 성서연구학의 일대 혁명을 초래하기에 이른다.

 

<오늘의 사족> : “필사자” 곧 중간자이며 매개자이다. 이것과 저것을 이어주는 자이다. 그 뿐, 제가 한 노릇의 대가만 받으면 만족해야지.

그가 곧 하늘이 되고자하면 망하는 법. 그 이치 모르고 “내가 곧 법”이라는 필사자들이 오늘도 판을 친다.

또 다른 쪽의 문제 하나.

필사자 곧 매개자를 하늘로 우기는 광신도들. 왈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