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돌이 되어 외치리니

어제 필라델피아 Glenside에 있는 Phil-Mont Christian Academy 강당에는 약 백여 명의 한인 동포들이 함께 했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인 두 분 어머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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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 인근에는 약 사만 여명의 한인동포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만 여명 가운데 백여명이란 그야말로 한줌거리도 아닐 것입니다. 1%를 넷으로 나누어야 하는 정말 적은 숫자입니다.

그러나 비록 적지만 스스로 돌이 되어 외치는 이들의 절박함을 듣고 그들의 바램을 이어가기에는 충분한 숫자였습니다.

두분 어머님과 함께 오지 못한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봅니다.

유해종(유미지 학생의 아버지)

“웬만하면 애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거, 해달라는 거 우리 나름 해주며 살았어. 근데 자식이 이제 세상에서 없어졌네. 화가 나고 정말 미칠 것 같았어. 그래도 하나님이 무슨 뜻이 있는 건 아닌가 싶고, 더 부패되기 전에 뭘 밝히라는 뜻 아닐까도 싶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것도 감사하다 싶고….이게 다 뜻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사실 유가족들도 지금 많이 지치긴 했어. 벌썰 몇 개월이 지난거야. 끝까지 가자는 사람도 있고, 우리가 정부를 싸워서 이기겠느냐, 계란으로 바위치는 거다 하는 사람도 있지. 너무 힘드니까. 근데 누구 하나 이탈하는 사람은 없어…..승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단기간에 끝날 싸움은 아니야.”

전민주(신승희 학생의 어머니)

“우리는 나라하고 싸우는 건데, 온통 거짓말만 한 나라하고 싸우는 건데, 이제 사람들은 돈 얘기만 해요. … 사람들이 자식 팔아서 돈 벌려고 그런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런 얘기 들으면 어떻게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저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식 아니라고 돈이랑 자식이랑 어떻게 바꿀까 싶고…”

“그동안 힘들었죠. 지금도 힘들고. 그래도 끝까지 갈 사람들은 언젠가는 진상이 규명된다 그렇게 말해요. 10년이든 20년이든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고.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맘이 편해요. 그것도 안하면 죄인이 될 것 같고… 언젠가는 이것도 끝이 있겠죠. 승희한테 엄마 진짜 열심히 했다고, 네가 헛되이 간 것만은 아니라고말할 날이 오겠죠. 아,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김진철(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제가 걱정인 건…… 일이 다 해결되고 함께혔던 분들이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면 저는 어떻게 살까하는 생각이 들어유. 여기와서 그려도 히히덕거리고 웃고 있지만 다 해결된 다음에는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이 되유. 지금도 술기운에 사는데… 제가 앞으로 살 계획을 소연이하고 함께 허것다고 꿈꿨는디 이제 모든 게 사라져 버린 것 같아유.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깜깜허유.”<딸아이를 먼저 보낸 김진철씨는다른 가족없이 홀로이다.>

정부자(신호성 학생의 아버지)

“대통령이 다녀간 후에 체육관에 TV가 설치됐어요. 그때부터 뉴스를 봤어요. 그런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뉴스가 나오더라고요….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세상을 알았나요? 애 키우고 맞벌이하고 내 가정만 챙기면 되는줄 알았지. 나라에 해경이 잇고 경찰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살았지. 이런 세상인지 몰랐죠.”

“나는 이런 나라인 줄 정말 몰랐거든요. 대통령이 애도 없이 혼자 사니까 욕심없이 똑바로 해줄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왔다가고 나서는 뭐가 더 이상했어요. 배를 가라앉혀 놓고는 애들을 건져 왔대요. 이 더러운 나라, 이 더러운 나라, 이 더러운 나라… 이런 나라에서 이렇게 아둥바둥하고 살았나…”

“누가 그러더라고요. 호성이 가고 호상이 엄마는 만능이 됐다고. 이상한 병에 걸렸어요. 뭐라도 해야 편해요. 애가 힘들게 갔는데 부모가 편하면 안되지 싶어서. 그래야 애한테 덜 미안하고 죄가 좀 가시는 거 같아서 정신없이 돌아다녀요. 아마 평생 갈 것 같아요.”

최순화(이창현 학생의 어머니)

“어쨋든 진실이라는 목표 하나 보고 달려가다보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내가 끝장을 봐야 해, 내가 결과를 내야 해 그런 생각은 아니예요. 전에는 저쪽 길로 갔다면 지금은 방향을 틀어서 이 길로 가는 건데, 그냥 끝까지 갈 뿐이지요.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간다. 그거예요. 이 길 가다보면 또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 우리 가고 난 뒤에 다른 사람들이 언젠가는 밝혀 줄 거다, 그건 확신해요. 우리가 앞서서 알마만큼 가줬으니까 다음 사람들이 거기서부터 출발하면 되니까.”

문종택(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저희 유가족들은 지금 세월호를 두번 타고 있습니다. 그런 유가족들에게 국민이고 정치인이고 언론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컨테이너를 얹고 , 쇳덩어리를 얹고, 쌀가마니를 얹어요. 선원들보다 해경들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어요.”

“우린 (진상규명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어요. 생명수당까지 다 줘야 해. 무슨 보상을 해 주려면 그동안 우리 일한 것 다 쳐서 제대로 해줘야 해. 보상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계산을 못하겠으니 당신들이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 어떻게 계산할 수 있어. 어떻게 계산이 돼. 자식 잃은 게 계산이 돼? 정신없이 쫓아다니며 하는 우리들 이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건강 잃으면서 하는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우리가 지금 만들려고 하는 안전법과 그걸 위해 하는 우리들의 행동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임종호(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유가족들은 노란 팔찌 차고 목걸이도 하고 있지만 딱 전철만 타도 뱃지 달고 있는 사람들이 없거든. 서울 광화문이나 가야 있지. 특정 지역에 가야 있지 진짜 보기 힘들어요. …세희 엄마도 특별법 제정 서명 받을 때 ‘이제 그만해’ 이런 얘기 진짜 많이 듣고 매번 울었어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고 위로 받고 그러면 힘이나. 그래도 혼자가 아니구나 하고. 축 처져 있다가도 힘이 나지.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계속 있으니까.”

노선자(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저는 정말 그전까지 기자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고 그걸 보도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때 처음 알았어요. 다 거짓말이에요. 인터뷰도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 말만 담는 것 같아요. 뉴스가 진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저는 앞으로 오래 살려구요. 오래 오래 살아서 우리 아들 기억해 줘야죠.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아들 잊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고 벌써 잊은 사람들도 있을텐데 나는 오래 버텨야 되겠는데…..”

***이상은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인터뷰를 기록한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 필라델피아에서 만났던 동혁엄마 김성실님과 경빈엄마 전인숙님의 목소리를 통해 제 맘을 두드렸던 그들의 외침입니다.

“우리는 외칠 것입니다. 하나 하나 떨어져 나가 단 한사람이 남더라도 외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돌이 되어 외칠 것입니다. 끝까지 단 한사람만이라도 남아 있기만 하다면 그 순간까지 부디 우리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요. 기억해 주십시요. 그것만이 우리들의 소망입니다. 그 바램으로 여기 필라델피아까지 우리들이 온 까닭입니다.”

 

“잘 들어라. 그들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누가복음 19 : 40, 공동번역

 

돌들이 소리 지르는 세상을 외면한 뒤에 오는 세상은 암흑일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