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狂人) – 하나님 나라 3

<하나님 나라-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27 

요한은 자기 제자 두 사람을 불러서 주님께 보내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읍니까?” 하고 묻게 하였다. – 누가복음 7 : 18 – 19 

이 소식을 들은 예수의 친척들은 예수를 붙들러 나섰다.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 내려 온 율법학자들도 예수가 베엘제불에게 사로잡혔다느니 또는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느니 하고 떠들었다. – 마가복음 3 : 21 – 22 

1991년 10월 30일 열린 한국의 기독교 대한 감리회 제 19차 임시 총회에서는 홍정수목사에 대한 교단축출 및 교수자격 박탈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2년에는 감신대 학장을 지낸 변선환목사의 교단 축출 및 교수직 박탈을 결정한 현대판 종교재판이 있었습니다. 

홍정수는 <베짜는 하나님 : 이단자를 위한 한국신학>이라는 그의 책을 통해 이른바 상생신학이라는 포스트모던 신학을 주장하여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변선환은 그의 논문 <불타(佛陀, Buddha)와 그리스도> 등의 글을 통해 다원주의신학을 주장하여 이단으로 정죄된 것입니다. 

변선환은 그의 서서 10주기 행사에서 그의 제자들에 의해 다음과 같은 복권선언을 받습니다.

“선생님의 신학을 이단으로 정죄해 출교시킨 후 과연 감리교회는 성장하고 풍성해졌나. 이제 사람들은 최고 심판관으로 변신한 교회가 무섭다고 한다. 종교는 무섭지 않은데 한국교회가 겁이 난다고 한다. 신학자들도 글 쓰거나 강연할 때 교회 눈치 살펴야 할 지경이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은 가장 기본적인 세상의 합리성과 상식이나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다음은 현재 LA 한아름교회에서 목회하는 홍정수목사가 최근에 한 말이다,

“언젠가 한번 지인들의 소개로 큰 부흥회를 가본적이 있다. 그 날 부흥 집회를 인도하는 사람은 하나님 그리고 축복만 강조하지 예수란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번 붙잡고 물어봤다. 당신은 왜 예수를 말하고,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만 얘기하냐고. 그랬더니 이 사람이 하는 말이 더 가관이었다. 그 사람 말인 즉, 하루 종일 지치고 힘들어 부흥집회를 와서 은혜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을 겪으신 예수 이야기를 하면 받을 은혜도 까먹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그 만큼 한국교회는 하나님은 찬양 할 존재로 인정하면서도 예수 하면 저마다 고개를 돌려 꺼려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를 말해도 마치 공식 처럼 ‘예수= 대속사건’이란 교리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미신적인 신앙관에 안주하기에 십자가의 깊은 의미 그리고 부활에 대해선 일절 언급을 꺼려한다.” 

먼저 왜 이런 일들이 감리교단에서 일어났을까요? 감리교는 한국내 개신교 교단 가운데 세번 째로 큰 교단(장로교 합동, 장로교 통합, 감리교…순)입니다. 

감리교는 칼빈의 예정설을 기반으로 한번의 거듭남(예수를 구세주 곧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면)으로써 구원에 이른다는 장로교와는 교리의 차이가 있답니다. 장로교가 예정설을 강조하는 반면 감리교는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에 따른 행위와 훈련의 과정을 통해 구원의 깊이가 깊어지고, 더욱 더 하나님 앞으로 완전하게 나갈 수 있다는 교리적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리적으로만 보자면 장로교와 캐톨릭의 중간쯤에 있다고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적으로는 비교적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기보다는 전통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중도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한국 감리교단에 속한 개교회들 – 특히 대형교회들은-은 거의 장로교, 특히 보수를 자칭하는 장로교회들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만큼 이상하리만큼 보수적(?)이랍니다. 이들이 교단을 장악하고 있기도 하고요. 변선환목사의 축출과정을 보면 그 배후에 명성(이즈음 아이들 인터넷 글쓰기를 흉내내자면 – 명성이라고 쓰고 악명으로 읽어야 하는) 드높은 김홍도같은 인물이 있답니다. 

제 삶의 반은 장로교 통합에 속한 교회에서 보냈고, 이민와서 인생의 반은 미국연합감리교단에 속한 교회에 속해서 신앙생활을 해 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한 교회, 이민와서 한 교회입니다. 제 경우에는 교회 뿐만 아니라 교단이 제가 예수쟁이로 사는데는 별반 주요한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연합감리교단에 속한 한인교회들 역시 한국내 감리교단과 마찬가지로 장로교단과 큰 차이가 없답니다. 한인교회에서 교리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징표이기도 하지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의 미국 복음주의(근본주의) 신앙 전통과 유교적 한국인들의 사회인식이 접목된 한국이나 미국 이민사회 한인교회들의 독특함은 따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여하튼 홍정수목사와 변선환목사는 교단의 권세가들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받은 바 있거니와, 깊은 물정이나 속내에 관심없는 이들에겐 “미친 놈”취급을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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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이쯤 예수의 하나님나라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하나님나라에 대한 인식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성서의 말씀들 가운데 이사야서가 있습니다. 두 군데를 찾아 읽어 보도록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 다윗의 왕좌에 앉아 주권을 행사하여 그 국권을 강대하게 하고 끝없는 평화를 이루며 그 나라를 법과 정의 위에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만군의 야훼께서 정열을 쏟으시어 이제부터 영원까지 이루실 일이옵니다. – 이사야 9 : 5 – 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 이사야 52 : 6 – 7” 

새로올 메시야의 모습과 그의 오심을 갈망하는 유대인들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로마와 그들의 앞잡이 헤롯왕가를 무너뜨리고 유대인들이 주인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줄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특히나 갈릴리인들 가운데는 무력투쟁을 통해 로마와 그들의 앞잡이들을 몰아내고 유대왕국을 세우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열심당(젤롯당)의 근거지가 갈릴리에 있었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향한  “당신이 바로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분이냐?”라는 세례요한의 질문은 비단 세례요한만의 질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예수가 이야기한 하나님나라 탐구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성서 마가는 예수가 본격적으로 그의 선교를 시작하려던 무렵 먼저 “미쳤다”는 소문에 휩싸이게 되었고, 가족들이 미친 예수를 붙들러 나섰던 사실을 전하고 있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의 친척들은 예수를 붙들러 나섰다.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 내려 온 율법학자들도 예수가 베엘제불에게 사로잡혔다느니 또는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느니 하고 떠들었다. – 마가복음 3 : 21 – 22” 

예수는 왜 그의 일을 시작하자마자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까요? 이제 그 까닭을 찾아 함께 나서 보기로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