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 갈릴리 4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20 

그 동안 베드로는 바깥 뜰에 앉아 있었는데 여종 하나가 그에게 다가 와 “당신도 저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군요”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는 여러 사람 앞에서 “무슨 소린지 나는 모르겠소” 하고 부인하였다. – 마태 복음 26 : 69 – 70 

그러나 베드로는 이 말을 또다시 부인하였다. 얼마 뒤에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시 “당신은 갈릴리 사람이니 틀림없이 예수와 한 패일 거요” 하고 말하였다. – 마가복음 14 : 70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 가시는 동안 그들은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흰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 “갈릴리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 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 사도행전 1 : 11 

이것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리에서 비롯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서 일어났던  나자렛 예수에 관한 일들입니다. – 사도행전 10 : 37 – 38 

예수와 그를 따르던 무리들을 일컬어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했다는 기록들은 성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가 부활승천한 이후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을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된 시기와 장소를 이렇게 적시하고 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 사도행전 11 : 25 – 26

그러므로 예수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 예수가 떠난 후 믿음으로 함께했던 무리들은  한동안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불리었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명칭의 최초 이름이 바로 “갈릴리 사람들”이라는 말도 성립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갈릴리는 어떤 곳이었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Map-Galilee-Northern-Palestine

요세푸스는 갈릴리땅이 너무나 비옥해서 게으름뱅이들까지도 그 땅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그 곳으로 이주할 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세푸스의 말에 좀 과장이 섞여있다 하더라도 갈릴리일대는 남부 유대지방에 비해 비옥했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은 곧 갈릴리 거주인들은 대부분 소작농이었습니다. 자기 농토를 경작한다고 하여도  영세농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로마와 예루살렘 종교권력에게 내는 과다한 세금으로 인해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대부분 농지의 실소유주는 예루살렘에 있고, 갈릴리 거주민들은 부재지주의 땅을 일구는 소작농이 주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어업은 갈릴리 사람들의 주요 직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당시 갈릴리호수에서 낚은 고기들은 염장처리되어 예루살렘은 물론이거니와 멀리 로마까지 수출되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갈릴리일대는 우리나라로 친다면 함경도나 만주의 간도 일대쯤을 생각해 본다면 쉽게 이해가 갈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역사적 환경 변화에 따라 우리나라 땅도 되었다가 중국을 비롯한 오랑캐의 땅도 되었다가 했던 지역이었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중심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땅 갈릴리라고 불렀던 까닭입니다. 갈릴리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남부 유대에 비해 다른 나라들의 문화를 많이 받아 들인 곳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갈릴리 사람들은 예루살렘 못지 않게 야훼 하나님 신앙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갈릴리가 유대 독립 봉기의 진원지가 된 것은 바로 그런 신앙 전통을 수호코자 하는 정신이 그 주민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유대 독립운동의 주축이었던 열심당(젤롯당)의 본거지가 바로 갈릴리라고 했을 만큼 예루살렘보다 더 유대적이기더 했던 곳입니다. 

이방인들의 땅이자 유태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반란의 땅이라는 이중성이 공존한 곳이 바로 갈릴리였던 것입니다. 

이쯤 갈릴리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록을 소개드립니다. 

“갈릴리는 광활한 지역이며 수많은 이방 나라들로 둘러 싸여 있었기 때문에 언제 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강력하게 저항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갈릴리인들은 어려서부터 전쟁에 익숙해졌으며 인구도 수없이 많았다. 갈릴리에는 용맹한 자들이 끊어진 적이 없었으며 땅은 전체가 비옥하고 풍요하였으며 온갖 종류의 나무들로 가득차 있었다. 

어찌난 소출이 풍부하였던지 천하의 게으름꾼들도 갈릴리에 오면 부지런히 경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따라서 갈릴리 지역은 노는 땅이 없었으며 그 주민들도 빈둥거리며 노는 자가 없었다. 

더우기 갈릴리 지역은 마을들이 수없이 많아 어딜 가든지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이는 다 땅이 비옥한 덕분인데 가장 작은 마을도 15,000여면 이상의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곳, 시대의 고통과 고민들이 넘쳐 나던 곳, 삶의 활력과 고통들이 뒤섞여 있던 곳, 바로 갈릴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