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주먹구구식 통계랍니다. 저희 세탁소를 찾아 주시는 손님들 피부색깔 분포도입니다. 그냥 쉽게 색깔별로 가렵니다. 백인 60%, 흑인 20%, 홍 또는 황인 20%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제 느낌이랍니다. 백인 흑인 구별은 빤한 것이고 홍, 황인이란 일테면 남미, 중동 및 아시안을 통털은 구별입니다. 아시안으로는 대충 인도, 중국, 베트남, 한국인들일 겝니다.
제 가게 카운터 앞 한 쪽 벽면엔 제가 찍은 사진들과 시 몇 편들이 걸려있답니다. 그 중엔 제 가족 사진들이 있는데, 그 가족 사진들을 보고 반응하는 손님들의 태도가 피부 색깔별로 사뭇 다르답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말입니다.
일단은 저희 가족 사진을 보고 건네는 ‘멋진 가족’, ‘아름다운 가족’이라는 인사치레는 똑같습니다만, 흑인들의 경우는 그 친밀도가 지나치게 과할 정도로 ‘아름답다’를 연발하며 까만 얼굴의 제 며느리와 곱슬머리 제 손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백인들의 경우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답니다. ‘멋진 가족’이라는 그 인사치레가 끝나면 많은 경우 사진 속 제 사위와 딸이 키우는 하얀색 수키 바로 사진 속 개에 대해 묻곤 한답니다. ‘무슨 종이니?’, ‘몇 살이니?’ 라는 물음으로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지요.
황, 홍인의 경우는 ‘참 예쁘다’히는 정도의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인사치레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기도 하고요.
이런 차이에 대해 평소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거니와 그냥 사람 나름이겠거니 하며 살았답니다. 그러다 읽은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그런 차이에 대한 답을 주었답니다. 참 재미있는책인 동시에 가슴 한 쪽이 아려 오거나 저희 세대의 삶에 대해 감사가 절로 이는 책이었습니다.
진화인류학자인 저자들은 약 10만년에 걸친 인간과 보노보와 침팬치 그리고 사람들이 기르는 개의의 진화 과정을 정말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제가 워낙 과학이나 의학이나 생물학 등에 문맹에 가까운 처지라, 이따금 몇 번을 해제를 읽고 알아챈 언어들을 한 페이지 넘기자마자 잃어버려 조금 시간을 낭비했지만 정말 재미있게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전체가 아홉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7장을 읽을 때까지 아무 부담없이 사람살이가 얼마나 좋은 쪽으로 진화되어 왔는지 편하게 읽을 수 있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맛있는 저녁을 먹고, 가장 편하게 쉬는 모습으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치닫는 7장(불쾌한 골짜기)와 8장(지고한 자유)를 만나면 아주 많이 불편하답니다. 일테면 미국에서 트럼프를 극혐하는 사람들과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마주치는 현장, 아님 한국에서 이지음 마치 20세기 중반 친탁, 반탁처럼 신탁통치 대신 탄핵을 놓고 대치하는 둣한 황당한 역사적 반동의 현장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조금은 불편하답니다.
그러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 저자들의 희망적 메시지를 만나게 되는데….자못 허무하답니다.
책장을 덮고 잠시 눈을 감고 보니 저자가 말하는 자못 허무한 듯한 희망적 메시지는 어쩜 진정한 인류 미래의 해답일런지도 모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이 책 마지막 장, 마지막 페이지에 저자가 남긴 말들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만한 충분한 공통기반을 찾아냈다. 다리가 둘이건 넷이건, 검건 하얗건, 그들리 우리를 사랑하는데는 그런 차이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적어도 나의 삶은 바뀌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다.”
** 꽃피는 봄에 내 손녀가 유아세례식에 입을 옷을 빨고 다리다. 남대문 시장에서 아내와 함께 고른 옷이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설날 내게 입혔던 설빔처럼, 장인, 장모가 아내에게 입혔을 추석빔 처럼. 아주 작은 기도와 함께. ‘우리가 살아온 시대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살아가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