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 사랑 – 한국여행 7

7.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마치며

    모두 아버지 덕이었다. 내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는 몹시 우울했다. 가난, 못 배움, 징용, 상이군인- 스물 푸르러야 마땅할 나이에 내 아버지를 짓누르던 말들이었다. 그러다 만난 예수였다. 피난지 부산에서 예수를 찾아 헤매던 시절 그 때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아버지는 몹시 절실했었다고 했다. 피난지에는 각종 종교집회들이 곳곳에서 무시로 이어졌단다.

    어머니 아버지가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올라와 신촌에 삶에 터를 잡게 된 것은 내 외할아버지 덕이었다. 아버지는 도장파는 기술을 배우러 다니는 길에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절며 나를 업거나 걸리며 데리고 다니셨다. 아버지의 이동식 도장포가 굴레방다리 아현시장 입구에 세워진 때는 내가 아직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다.

    그 무렵 아버지는 바람산 언덕배미에 있는 신촌 대현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다. 아버지는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일을 지난 해 여름 백수(白壽)를 누리고 떠나시는 날까지 오래도록 감사하셨다. 그리고 그 감사는 오늘 내게로 이어진다.

    아버지를 따라 아무 생각없이 다니던 그 대현교회에서 내 머리가 굵어지고, 자라며 때론 질척이며 흔들리기도 하고, 때론 아주 멀쩡하게 제법 얼추 바른 정신 세운 양 흉내 내 보기도 하는 사이에 코흘리개였던 내가 이제 노인의 반열에 끼게 되었다.

    초, 중, 고, 대학을 거쳐 나이 서른 즈음에 그 교회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 후 대현교회를 떠났었다. 그렇게 사십 년 넘은 시간이 흐른 후, 지난 해 성탄 무렵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어찌어찌 두 해 연속으로 한국여행을 하게 되어 더러는 일년만에 다시 보는 얼굴들도 있었지만, 거의 오십 년 또는 사십 년 만에 만난 친구들도 많았다.

    지금 대현교회 목사님과 당회 그리고 아직도 그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 그 모임을 열심히 준비한 선후배들, 내 신앙의 선생 홍길복목사님 등 여러 사람들 덕에 누린 참 좋은  여행이었다만, 우리들의 신앙고백으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으로 누린 참 귀하고 감사가 이어져야 마땅한 시간들이었다.

    내가 종종 우스개 소리로 하는 성경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른바 ‘간음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로 잘 알려진 대목이다.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또다시 성전에 나타나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앉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 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에 내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 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

    성서 요한복음 8장 1-11절은 공동번역 개정판에서 옮겨 적은 것이다.

    신학적으로 학자들 간에 다툼도 많고, 설교자라면 몇 번 쯤은 되뇌였을  성서본문이기도 하였을 터이고, 교회 근처에 발 한번 디뎌 본적 없는 이들도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법하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기도 하고, 패러디가 유행하는 세태에서 별별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이 낳게 한 성서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을 떄마다 ‘그 때 사람들은 정말 착했구나’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나를 또는 너를 또는 그들 누군가를 내가 이 이야기를 읽거나 들었던 1950년대부터 오늘 2025년에 이르기 까지 그 어떤 시점이던 그 이야기의 주인공 또는 주변 인물들로 대입시켜 보면 언제나 잃지 않고 들었던 내 생각이다.

    일테면 내가 이 이야기 속 간음한 여인이어도, 예수 곁에 모인 군중속 한 사람이어도, 율법학자이어도, 바리새인이어도, 아니 내가 예수라도, 내가 살아왔던 1950년대와 2020년대 시점이라면 똑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도달할 수 있는 대답이다. “그 때 사람들은 정말 착했구나!”

    그러나 때때로 그 때 똑 같은 상황이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일어나는 경험을 맛 볼 때가 있다.

    2024년 성탄 즈음, 서울 신촌 대현교회에서 사, 오십 년 만에 만난 친구들을 향해 사십 수년 만에 겨울 성탄절을 맞는 호주 이민 목회자 홍길복 목사가 사십 수 년 전과 똑같이 성탄은 “사랑, 사랑, 사랑이어야 마땅합니다”라고 외치는 순간이었다.

    그랬다. 돌이킬수록 신 앞에서 부끄러운 B급 아니 C급 사람살이 걸음걸이 이어왔을지라도, 오늘의 삶을 감사할 수 있는 까닭은 신촌 바람산 언덕배미에 사철 푸른 담쟁이 넝쿨로 덮힌 대현교회에서 만난 예수와 선생님들과 친구들 덕이었다.

    그저 감사함으로.

    * 아내의 동기들, 아내를 늘 각별히 챙겨주는 영숙, 경희 아내의 언니들, 경자, 병덕 그리고 함께 못해 아쉬웠던 경애 내 동기들…. 특별히 누이를 극진히 챙겨준 큰 처남에게 인사하며.

    ** 예수님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처럼 사랑하며 함께 사는 이야기들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을 믿으며… 이 생각 하나 제대로 가르쳐 주신 선생 홍목사님께.

    *** 아름다운 나라에서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과 나누었던 잊지 못할 아름다운 시간들을 간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