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 사랑 – 한국여행 1

  1. 걸으며…

기억의 오류 탓일까? 아님 이제 나이 든 때문일까? 기억컨대 길든 짧든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일을 앞에 두고 주춤거렸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만, 이번엔 영 아니었다. 자그마치 꼬박 나흘을 헤매였다. 밤이면 잠이 달아나고 낮엔 눈이 게슴츠레 감긴 채 지냈다. 그러다 간밤에 내 잠시간을 온전히 되찾았다.

아직은 ‘아니!’라고 외치고 싶다만 정말 아니가보다. 이젠.

광화문 거리를 걷다가 들린 교보문고에서 뽑아 들고 온 책 <나이듦에 대하여> 78쪽엔 이런 말이 있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누구나 노인이 된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러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상당수가 노인이 되었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태어난 인류의 총수를 1천 82억명이라고 한다. 대략 수백억 명이 노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1천 82억명 가운데 하나이자, 영광스럽게도 노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수백억 명중 하나가 되었다. 이젠.

사실 이번에 서울 지하철에서 난생 처음으로 자리 양보를 받았을 때엔 그야말로 난감했었다. 주춤거리며 제법 큰소리로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에게 말했었다. “아니요! 아니요!” 끝내 나는 자리를 양보 받았고 그날 이후 나는 지하철 노약자석에 자신있게 앉아 다녔다. 그리고 생각난 내 고모님이었다. 햇수로는 벌써 삼년이 지났다만 시간으로 따지자면  만 일 년 조금 전에 아흔 두해 사시고 세상 떠나신 하나 밖에 없는 내 고모님께서 얼추 내 나이 적에 크게 웃으시며 했던 말씀이었다. “얘야! 버스를 탔더니 젊은 아이가 자리를 양보하지 뭐냐? 넌 아직 모를거야, 그 때 내 심정 말이지. 화가 나더라니까….” 어느새 나도 그 때 그 시절 고모님 나이에 이르렀고, 그 고모님은 이젠 한국 가서도 뵐 수 없었다.

본전을 뽑고 싶었다. 한국에서 낳고 살았던 세월보다 미국에서 산 세월이 오년이 더 길어졌다. 여기도 평생 외국이고, 한국도 이제 내갠 외국이다. 가는 비행시간 쉬지 않고 15시간 반이고, 집에서부터 서울 숙소까지 이르는데 꼬박 22시간이 걸린 여행길이었다.

글쎄, 언제 또 한 번 가 볼 수 있을까? 하여 본전을 뽑고 또 뽑고 싶어 걸었다. 아내의 손을 잡고, 때론 아내를 앞세우거나 아내보다 한 걸음 앞서거나 또는 혼자서 걷고 또 걸었다.

우리 내외 고향인 신촌과 소년, 소녀기와 청춘을 보낸 신문로 광화문 효자동 안국동 인사동 종로 을지로 남대문 명동 마포 공덕 등지의 서울 거리와 강남 강동을 비롯한 경기도 일산, 철원, 전곡, 양평등지의 경기도와 경상도 영주 부석사를 비롯하여 충북과 경북이 만나는 죽령고개, 그리고 잊지 못할 봉화에서의 하루 밤, 오랜 벗 내외가 평생 일구어 온 이야기를 만난 대전 대화동을 거쳐 이제야 이난영의 소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전남 목포거리와 유달산, 그리고 새해맞이 해돋이를 보며 아내손을 잡고 걸은 강원도 속초 해변 모랫길.

그렇게 걷고 또 걸었었다.

그렇게 걸으며 만난 사람들과 우리들의 삶 그리고 그 모두를 이어주는 끈, 바로 사랑이었다.

이 여행에서 만난 이들은 이제  거의 노인이 되었다.

책 <나이듦에 대해서>를 펼쳐 들면 첫 쪽에서 만나는 말이다. <우리는 투쟁하도록 승리하도록 만들어졌어요. 슬픔과 멜랑콜리여 안녕. 우리에게 끝이란 없어요. 끝은 바로 이 순간이고, 매 순간 끝은 확장되니까요. 우리를 지배하는 강렬한 정신 활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니. 이는 우리가 그렇게 원하기 때문이예요.  – 피에르 고베티>

이제 노인이다. 그래서 축복이다. 하여 감사다. 매 순간 끝을 확장시킬 수 있는 나이임으로.

동해 바닷가에 떠오른 해처럼. 해를 향해 달려 날아가는 새떼들처럼.

2024-25년 겨울에, 걸으며 만난 모든 이들과 눈과 맘에 담은 숱한 기억들을 잊지 않고져 이어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