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선생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부르는 작은 음악회’에 왕복 세시간 운전을 하며 다녀왔다. 정말 조촐하게 작은 음악회였지만,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내가 누린 소망은 밝았고, 희열은 매우 컸다.
노래 부르는 이들을 쫓아 따라 입을 떼며 옛 생각들이 마구 스쳐 지나 갔었다. ‘검푸른 바닷가에….’ 그 친구를 따라 부르며 내 스무살 언저리 친구들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고, ‘금관의 예수’를 따라 부르며 종로 오가 기독교회관를 드나들던 내 청년 시절 한 때의 벗들을 떠올렸으며, 노래극 ‘공장의 불빛’ 가운데 ‘이 세상 어딘가에…’를 읊조리면서는 동일방직과 YH공장 사십 수년 전 당시 내 또래 누이들의 고통스럽던 모습들을 떠올렸었다.
‘철망 앞에서’와 ‘천리길’을 이젠 잘 나오지 않는 목청을 뽑아 따라 부르면서는 이 이민의 땅에서 조국 통일과 평화를 위해 삶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다 떠나신 필라 우리 친구들의 어른 장광선선생도 떠올렸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이즈음도 우리 내외가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곧잘 함께 흥얼거리는 노래여서 정말 좋았다.
언제나 흥에 넘치는 아내도 한 곡을 택해 불렀다. ‘그 사이’였다. 김민기선생이 1972년도 만든 노래이니 내가 대학 입학을 했던 해이며, 유신 계엄이 일어난 때였다.
그 사이 – 1972년에서 2024년, 자그마치 52년 이라는 세월의 간격 사이엔 숱한 사건들과 변화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1979년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꿈을 찾다가 스러지며 그래도 ‘손 놓치지 말고 파도와 싸우’자던 동일방직 YH 그 누이들 뒤를 이어 일어난 부마항쟁 끝에 박정희 유신독재는 끝이 났었다. 그 때 누이들의 참담했던 기록들을 아현동 굴레방다리 아주 작고 초라했던 내 출판사에 작은 책자로 펴낸 기억도 떠올랐다.
그리고 1987년 그 뜨거웠던 여름, ‘아침이슬’로 뒤덮여진 신촌에서 시청앞까지 뚜벅뚜벅 걸었던 날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순간 솔직한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1979년 그때처럼 전두환 독재가 그리 무너질 지는 몰랐었다.
그랬다. 8.15 광복, 4.19 며칠 후 이승만의 몰락, 박정희의 비참한 죽음, 전두환 그 비굴한 끝을 당시 그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랐었다. 언제나 그랬듯 몰락의 징후들은 차고 넘쳤지만, 세상을 덮고 있는 권력과 비굴한 아부꾼들과 무지한 맹종자들과 하루 입에 풀칠하기 바쁜 사람들이거나 제 살 길에 바쁜 사람들에겐 그 날이 그리 빨리 올지는 몰랐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정말 많은 것들이 좋아지고 밝아졌다만, 권력에 이르면 그 어떤 분야의 권력이든 이승만이래 문재인정권까지 모든 정권에서 보아왔던 비겁, 비열, 무지, 무능, 사악 나아가 반통일, 반평화, 친일을 넘어 숭일 매국 정신으로 똘똘 뭉쳐진 놈들의 세상처럼 다가오곤 한다. 한국 뉴스들이.
허나 역사의 반동들이 기세를 마음껏 부리는 세상을 바라보니 그 끝과 몰락이 눈에 보인다. 숱한 징후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하여 그 사이 – 별거 크게 변한 것 없다. 사람 같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 곧 올게다.
김민기선생이 꿈꾸던 내일의 아이들을 위한 꿈에 무대가 펼쳐지는 세상이 말이다. 그래서 희망이다.
오늘 그 작은 음악회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준 필라의 아름다운 친구들에게 감사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