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

온종일 뜨겁던 해도 질 땐 아름답고 부드럽다.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그렇게 만든다. 하여 저녁은 언제나 넉넉하고 풍요로와야 마땅하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라도. 비록 꿈일지라도.

지는 해를 바라보는 내 삶은 여전히 꿈 속이다만, 뜰의 꽃과 풀과 나무들은 지는 해와 더불어 아름답고 부드럽고 넉넉히 풍요하다. 그리고 코스모스는 그게 또 부끄럽단다.

칠월도 저물어 가는 저녁에.

감사에

<감사에>

장례예배와 하관예배 손님들 접대를 마치고 돌아와 맞는 저녁입니다. 왔던 아이들도 다 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마치 한 열흘 동안 먼 여행을 끝나고 돌아와 앉아 있는 느낌입니다. 이젠 다 말라 없어진 줄 알았던 눈물이었는데, 얼핏 들리는듯한 아버지 목소리에 주르르 흘리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어제 밤 장례 예식에서 손님들에게 드린 제 인사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 감사입니다.

이 더위속에 저희 아버님께서 하늘나라 가시는 길에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예식을 준비하여 주신 델라웨어 한인 감리교회와 정범구목사님 그리고 교우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멀리 타 주, 타 도시에서 함께 해 주신 분들께 송구함과 함께 드릴 수 있는 말씀 그저 감사 뿐입니다.

부활의 믿음 위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먼저 떠나가신 이들의 삶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곤 합니다. 저희 자식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제 아버님의 마지막 순간들을 고요하고 평안케 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드리고 싶은 말, 역시 그저 감사, 감사, 감사 뿐입니다.

아버님 연세 만 아흔 여덞이셨습니다. 옛 우리 나이로는 아흔 아홉입니다. 이걸 옛날 어르신들은 백수(白壽)라고 했습니다. 백살에 한 살 못 미치는 나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즈음 백세시대라는 유행에 걸맞게 장수하셨습니다. 아버님은 타고나신 치아들을 거의 다 그대로 간직하고 떠나셨습니다. 떠나시기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안경없이 웬만한 글들을 다 읽으셨습니다.

게다가 돌아가신 병명이 없으십니다. 앓고 계시던 병이 하나도 없으셨다는 말입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사람의 나이를 다 사시고 아주 평온하신 모습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하여 또 감사입니다.

이것 하나 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년 전 먼저 떠나신 제 어머님과는 일흔 세해, 자그마치 칠십 삼년을 함께 사셨답니다.

그 어머님께서 저 하늘에서 지금 아버님께 재촉하신답니다. “이 양반아! 끝났으면 빨리 오시지 뭘 그리 꾸물거리시나?” 그 어머니 말씀에 제 아버님 지금 마음이 매우 바쁘다십니다.

하여 제 이야기 짧게 끝내겠습니다.

아버님의 어린 시절은 참으로 불우하셨습니다. 열살에 어머니 곧 제 할머니를 여의고, 열 여덟에 일본 탄광 노동자로 끌려 갔었고, 스물 다섯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이 되어 전투중에 다리에 부상을 입은 상이군인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블구하고 제 아버님은 그저 감사함으로 자신의 삶을 사랑했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감사했던 분이셨습니다.

아들인 제가 제 아버지를 기억하는 단 한가지를 꼽으라면 “정말 착하게 사셨다”는 말일겝니다.

그렇게 저희 일가를 이루셨습니다. 하여 또 감사입니다.

제 이야기를 마치기 전 그런 아버지를 제가 새길 수 있게 해준 여자들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제 어머님이십니다. 일찍 돌아가신 제 할머니의 빈 자리를 73년 그 긴 오랜 시간을 채우셨던 사람, 바로 제 어머님이셨습니다.

둘째는 제 세 누이들과 제 아내입니다. 제 어머님 마지막 삼 년, 그리고 어머님 먼저 가시고 아버지 홀로 지내셨던 사 년 세월을 제 아버지가 ‘정말 착하게’ 지낼 수 있게 옴 몸과 맘을 다해 함께 했던 제 누이들에게 정말 깊은 감사를 보냅니다. 특별히 제 누님의 노고가 정말 컸습니다. 막내 동생의 헌신은 늘 제 기대 이상이어서 그 고마운 마음의 크기가 참 큽니다. 아마 남편인 최준용 장로의 기도가 셌던 모양입니다. 멀리 살아서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함께 했던 둘째에게도 똑같은 고마움을 보냅니다. 아내와 매형의 헌신과 기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고마움 목록들 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아버지께서 가르치고 남겨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대한 믿음으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여러분들과 함께 보내는 오늘, 바로 이 시간이 정말 감사합니다.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이만 감사의 말씀을 접으면서…. 마치 제 아버님께서 부르시는 노래 같은 시 하나 읊으렵니다.

귀천(歸天)

          – 천상병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가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생각지도 않게 아버지의 삶을 기리는 공훈증서를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New Castle County Executive(카운티 행정관이니 군수라고 할까요)명의로 보내와 감사 목록을 하나 더했습니다.

** 오늘 하관예배 즈음에 100% 비가 그것도 폭우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는 보기 좋게 빗나가 제 감사의 크기를 한층 높게 쌓을 수 있었습니다.

*** 얼굴을 마주 대했거나, 목소리로 또는 글로, 이렇게 저렇게 얽힌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위로와 조의를 전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