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다섯 해 전 일이 되었습니다. 그 해 일월, 장인이 세상 떠나실 때만해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주 먼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장인의 장례는 준비했던 대로 많은 이들이 함께 하는 가운데 떠나시는 어른께서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치루었지요.
이월이 되자 우리 동네에도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동네 신문을 크게 장식 했었답니다. 그리고 삼월이 되자 주를 넘나드는 여행에 이런저런 제약들이 생기더니만, 급기야 생활에 아주 필수적인 영업행위를 제외하곤 모든 영업을 중지하라는 주정부의 명령이 떨어졌지요.
그 해 이 맘 때인 오월 어느 날, 어머니께서 떠나셨지요. 아흔 세 해 여행길 마치시고 떠나시던 날, 어머니의 마지막 날숨은 아직도 제가 느낄 만큼 편안하게 다 내려 놓으신 듯한 여운으로 남아 있답니다.
어머니의 장례는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치루어야 했답니다. 집례 목사님들과 가까이 사는 우리 남매들 부부들 그리고 어머니와 가까이 지내던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몇 분들이 모여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었지요. 멀리 사는 여동생내외와 어머니의 손주들, 증손주들은 Zoom Meeting으로 , 장례예식을 마친 후, 교회당 앞에 세워 둔 어머니의 운구차를 향해 예식을 함께 하지 못한 교인들이 각 자의 차안에서 인사를 하며 지나가는 아주 독특한 사치까지 누리시며 어머니는 떠나셨답니다.
그게 벌써 다섯 해가 지난 일이랍니다.
제 삶의 재미가 바뀐 때는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하루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는 삶을 이어오던 제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갑자기 무료하게 긴 시간을 던져 주었습니다. 가게 문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게 차고 넘치는 것은 시간 뿐이었습니다.
특별히 가진 재능이나 취미 따위가 없는 제게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남는 시간들이 주어지자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알 수 없는 불안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해 봄이 다 갈 즈음, 문득 제 눈에 들어 온 것은 흙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 때까지 전혀 몰랐었답니다. 한 뼘 땅속 흙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재미를 미처 몰랐었답니다.
흙을 뒤엎어 숨 쉬시게 하고, 흙이 품을 씨앗과 모종과 묘목을 안겨 주고, 물을 주면 흙은 놀랄만한 창조물들을 보란듯이 내어 놓곤 하는 그 재미에 훅 빠져 다섯 해를 보낸 듯 합니다.
오년 전 갑자기 다가 온 남는 시간에 대한 불안은 이젠 부족한 시간에 대한 불만으로 바뀔 만큼 흙이 주는 재미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흙과 노는 사이에 점점 더 흙과 가까워지는 나이로 나아가곤 있지만, 이렇게 나이 들어 간다는 게 그저 감사할 뿐이랍니다.
이른 봄꽃들을 거둔 흙들은 이젠 철쭉, 알리움, 라이락, 장미 등 늦봄과 여름꽃들을 내밀고 있답니다.
집 앞 꽃길도 따지고 보면 다 흙이 만들어 낸 놀이가 베푸는 재미일겝니다. 파 꽃은 일상의 작은 염려들을 재우는 재미까지 얹어 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