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아무 수식 없이 제 이름을 그대로 불러 줄 사람이 더는 없을 줄 알았습니다. ‘영근아’. ‘영근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제가 사는 동네에선 이젠 없습니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누워 지내시는 아버님이 유일한데, 아버지도 이젠 제 이름을 잘 부르지 않습니다.

이젠 제 이름 앞뒤로 이런 저런 수식들이 늘 따라 다닙니다. 하다못해 ‘미스터’나 ‘씨’가 따라 다닙니다. 여기 친구들이 ‘Young’이라고 저를 부르곤 합니다만, 솔직히 ‘영근아’라고 부르는 것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답니다.

제 맨 이름 ‘영근아’나 ‘영근이’를 듣기 위해선 이젠 한국에 나가 어릴 적 친구들을 찾아 나서야만 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이런 행복이 어디 있을까요?

반 년 전에 정말 오랜만에 만난 어릴 적 내 고향 신촌 친구들, 더더욱 대현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 자란 옛 친구들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의 맨 이름들을 부르고 듣는답니다. 저는 친구들을 경자야, 경애야, 병덕아 라고 부르고 친구들은 저를 영근아 라고 부른답니다.

앞뜰 체리나무 꽃이 만개한 날, 여름에 꽃피는 구근들을 심었습니다. 그렇게 흙과 함께 놀다 문득 바라보니, 어느새 꽃잎 떨구며 지는 튤립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한철 아름다움을 뽐냈던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녀석들이 제 각각 제 아름다움들이 다르더군요. 색깔과 모양들이. 튜립조차 다 같은 튜립들이 아니었답니다. 저마다 다 이름 하나씩 지어 주고 싶었답니다.

이제 저물어 가는 때에 진심으로 서로 이해하고 서로를 인정하며 옛날 어릴 때처럼 제 맨 이름, ‘영근아’, ‘영근이’를 불러주는 친구들이 있어 참 좋습니다.

오늘, 내가 누리는 행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