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破墓)에

간만에 속 ‘시원한 혁명적’ 한국 뉴스를 만나는가 했다. 결과는 분명 압도적이었건만 ‘시원한 혁명적’ 지점엔 도달하지 못했다.

‘시원답답’한 마음으로 필라에 올라가 영화 <파묘>를 보고 왔다. 아직 우리에겐 ‘뽑아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 중에 가장 앞에 서는 것 바로  ‘말’ 아닐까? 누군가의 ‘말’로 널뛰는 세상이 바로 정치요, 말이 세상을 세우는 명분이기도 하고, 때론 세상을 망치는 요설이 되기도 하므로. 그 위에 장난질 치는 으뜸 꼭두각시는 이른바 언론.

<언어가 없는 인간들에게 공동체도, 사회도, 계약도, 평화도 없다는 점은 동물세계와 다를 바가 없고 인간이 언어를 가진다는 것은 축복이자 저주이다. 합리적 사고와 과학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축복이고 일시적인 욕망과 기호에 따라서나, 산만하게 언어를 사용하여 재앙을 초래하기 때문에 저주이다.> –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리바이어던(Leviathan)에 남긴 말이다

하여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일시적인 욕망과 기호에 따라서나, 산만하게 언어를 사용하여 재앙을 초래하는> 저주들을 찾아 파묘하는 일에 나서는 일. 바로 요설들에 혹하지 않는 사람들의 연대를 넓혀 가는 일.

사람들이 그 일에 매진하는 세상을 꿈꾸며.

영화 <파묘> 잘 보고 돌아온 날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