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이 아닌 땅에 뿌리를 내린 화초나 나무 한 그루 찾기 힘든 돌의 도시 피렌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갈릴레오의 도시이며 마키아벨리의 도시이기도 했던 피렌체. 피렌체는 돌의 도시이자 ‘거대한 돈과 권력의 도시’, 그 돈과 권력에 항거하는 ‘풍자의 도시’로 내게 다가 왔다.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 Galleria degli Uffizi)을 안내해 준 RaFael은 그야말로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단지 우리 일행 네 명을 위해 그는 정성껏 피렌체와 우피치와 메디치 가문과 르네상스와 신이 된 종교와 돈과 권력 나아가 그것들을 풍자하는 예술에 대한 설명에 온 열정을 다했었다. 그는 피렌체를 휴머니티(humanity)와 휴머니즘(humanism)의 도시로 소개하려고 많은 애를 썻다. 나는 그런 그의 노고 덕에 종교와 돈과 권력의 역사 그리고 그에 항거하는 사람 사랑 곧 진정한 신의 역사를 이루고자 한 옛 사람들의 노고를 맛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참 재밌었던 사내 RaFael을 만난 것은 이번 여행에서 맛 본 은총 중 하나다.
미술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설명하던 RaFael의 말이었다. “저기 가면 금, 은, 다이아몬드 등 보석상들과 유명 시계점들이 저 다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보실거예요. 근데요. 처음에 저 다리엔 정육점 등 서민들이 찾는 음식점들이 많았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그런 가게들이 모두 문닫고 보석상과 시계상으로 바뀌었데요. 왜냐하면요. 도시의 돈을 다 움켜잡고 있는 메디치 가문에서 그랬데요. ‘돈 많은 우리 가문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가게만 장사하게 하자’고요.” 물론 우스개 소리였겠다만 나는 사람사는 세태를 풍자한 그의 우스개가 단지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았었다.
미술관과 베키오 다리 등을 구경 한 후 저녁식사를 위해 어느 골목의 그럴싸한 식당문을 두드렸었다. 바깥에서 보기에 작지만 잘 꾸며진 식당이었다. 분명 영업시간 중이었는데 가게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문을 흔드니 종업원이 문을 열며 물었다. “예약 하셨나요?” ‘아니’라는 우리들의 응답에 잠시 난색을 표하는 듯 하더니, “몇 분이지요?”라고 물었다. ‘넷’이라는 응답에 또 잠시 멈칫 하더니만 “들어 오시지요.”했다.
그렇게 들어 간 식당엔 우리들이 첫 손님인 듯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들어오는 손님들 마다 우리와 똑 같은 대화와 종업원의 표정과 몸짓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작은 가게 안은 이내 만석이 되었는데 내가 들은 한, 딱 한 팀만 예약 손님이었을 뿐, 나머지 모두는 우리처럼 지나가다 들어 온 손님들이었다. 참으로 뻔뻔한 상술이었늗데, 면벌부(또는 면죄부) 상술로 도시를 이룬 후예들 답다는 생각으로 그냥 많이 웃었다. 그 날 저녁 음식도 참 맛있었다.
여행의 참 맛은 밤거리에 있다던가. 그 날 피렌체의 밤거리에서 우리 일행은 잠시 청춘이었다. 거리의 악사들 연주에 맞추어 무리 지어 춤을 추던 한 떼의 젊은이들을 보며 몸에 시동을 걸던 아내가 그 무리에 섞여 춤을 추고 악사들과 함께 북을 두드렸고 우리는 한껏 즐거웠었다.
허나 참 바보같기도 하지. 기껏 사진을 찍다가 흥에 취한 아내 모습을 담을 생각 못하고 그냥 서있기만 했으니. 쯔쯔…본래 바보였는지도.
하여 잊지 못할 피렌체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