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 전날 급하게 준비한 물건들은 우산과 우비와 방수 처리된 옷들이었다. 우리들의 여행코스 내내 비가 함께 할 것이라는 일기예보 때문이었다. 그것도 약간의 비, 간혹 비 정도의 예보가 아닌 온종일 비였다.
날씨는 예보대로 였다. 경유지인 리스본만 하여도 화창한 날씨였건만 첫 도착지 베니스에 이르니 그야말로 우중(雨中)이었다. 허나 거기까지 였을 뿐, 이후 여행 내내 비는 이따금 오락가락 했지만 줄곧 우리들을 피해 다녔다. 나는 “운이 좋았다”며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전했는데, 친구 하나가 이르길 “야! 그걸 은총이라고 하는거야!”라며 나무랐다. 나는 흔쾌히 그 말을 수긍했다. 예보와 달랐던 날씨는 여행중 우리들이 누린 은총이었다.
베니스가 베네치아로 다가오면서 내 상상 속 베니스는 힘없이 무너졌다. 사실 베니스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베니스의 상인’의 무대라는 것, 아름다운 물의 도시라는 막연한 상상이 모두였다.
이번 여행을 알차게 만든 이들은 곳곳의 박물관 안내자들이었다. 그들과의 예약은 모두 최권사 몫이었다. 안내자들은 모두 매우 뛰어난 이야기꾼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 화법에 혹한 까닭은 그들이 전달자가 아닌 소개하는 작품이나 유물, 기념물 속 주인공이 되어 말하기 때문이었다.
첫번 째 안내자를 만난 곳은 ‘도제의 궁전(Doge’s Palace)’으로 알려진 Palazzo Ducale(두칼레 궁전) 앞 날개 달린 사자상 앞이었다. 안내자는 ‘유럽을 걷다(Walks in Europe)’이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걷기 여행은 시작되었다.
숙소에서 그곳에 도착하기 까지 버스를 타고 로마광장을 거쳐 수상버스로 갈아 타야 했는데, 그 모든 과정들이 우리 일행에겐 도전이었고, 제법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안내자를 따라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과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의 유골이 안치 되어 있다는 산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을 돌아 보았다. 안내자는 궁전에 입장하기전 꽤 오랜 시간 동안 역사 강의를 시전하였다. 궁전과 성당을 보기 위해서는 마땅히 베네치아의 역사 곧 이탈리아가 아닌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는 열정을 다한 강의였다. 그녀의 독특한 억양으로 그 날 수없이 들었던 ‘originally’라는 말이 아직도 귀에 맴맴 돈다. 그녀는 위대한 베네치아 공화국의 시민이었다.
궁전과 황금빛 성전 구경을 마치고 산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과 뒷골목 풍경들을 두루 눈에 담은 뒤 광장 맞은 편 코레르 박물관(Museo Correr)을 섭렵하니 한나절이 휙 지나갔다.
골목 – 비단 곤돌라가 다니는 베네치아 뿐만 아니라 여행 내내 도시의 골목들은 박물관 못지않게 그곳을 살다 간 사람들의 어제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오늘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었다.
베네치아 섬 속에도 성(聖)과 속(俗)은 그렇게 어우러져 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저녁엔 산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의 바이올린 연주자의 아들로 이 곳에서 태어났다는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를 기념하여 열린다는 음악회를 즐겼다. 비발디 교회(Vivaldi Church)로 알려진 피에타 성당(Maria della Pietà)에서 있었던 사계 연주회(Four Seasons Concert)였다.
내가 음악에 대해 뭘 알까마는 때론 이런 사치와 허영 정도는 누려도 과하지는 않을 터. 그 피곤함에도 졸지 않고 즐겼으니 비발디에게 미안함은 없었고.
사족 – 여행 내내 느낀 것이지만(몇 해 전 파리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도대체 화장실에 대해선 끔직히도 베니스 상인 샤일록만큼이나 구두쇠적인 문화는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는…. 연주회를 마치고 주체할 수 없어 화장실을 찾는 내가 들었던 말. “교회내 화장실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이 가까운 카페에서 싸고 다시 채우느냐고 맥주 한 잔! 며칠 후 로마에서는 거금 일 유로를 주고…. 여행은 때론 참 불편해! …. 그 구두쇠 문화의 끝판을 확인한 것은 며칠 후 로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