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성(聖)과 속(俗) -6

피렌체에서 로마로 향하는 열차안에서 바라본 농촌 풍경은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내게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느긋하고 조금은 여유로웠던 마음이 로마에 이르러 완전히 분주해 지기 시작했다. 로마는 뉴욕이었고 서울이었다.

우선 숙소를 찾아 가는 길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온전히 구글신에게 의존하여 길 찾기에 나선 여행이었고, 거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방향과 거리와 시간을 알려주는 구글신이였지만, 때론 길 찾는 신도의 아둔함으로 인해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하는 법. 로마에 이른 우리 일행의 모습이었다.

어찌어찌 구글신과 사람들에게 물어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티켓을 구매하고 숙소로 향하는 지하철 입구로 향했다. 그렇게 지하철 입구로 향하다가 낯익은 얼굴들을 만났다. 뉴욕에서 리스본을 거쳐 베네치아로 오던 비행기에서 만난 두 노인들이었다.

우리들은 그 노인들이 친구 사이인 줄로 알았었다만, 알고보니 아버지와 아들 사이였다. 두 부자는 보스톤에 살고, 가늠컨대 아버지는 팔십 대 초 중반, 아들은 육십 전후 또는 초반의 나이인 인도계 미국인들이었다. 아들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다 얼마 전에 은퇴 하였다고 했다.

그들 부자와 함께 전철을 타기 위해 입구에 다달았을 때였다. 입구에 서있는 경찰에게 혹시나 해서 물었었다. 이 입구가 우리들이 가려는 숙소를 향해 가는 것이냐고. 그는 친절한 어투로 ‘그렇다’고 대답하며. ‘소매치기 조심하시오. 돈과 여권이 들은 가방은 앞으로 향하게 매시고 꼭 잡고 있으시오!’로 정말 친절히 알려 주었다.

그렇게 두 노부자와 우리 일행은 입구를 통과해 전철을 타기 위해 걸었다. 많은 사람들과 휩싸여 걷고 있는데 누군가 역무원 비슷한 처자가 우리들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안내를 했다. 사단은 바로 거기에서 일어났다. 어디선가 젊은 처자들 서넛이 갑자기 나타나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는데, 엘리베이터는 고작 대여섯명이 타기에도 부족한 공간이었다. 더더군다나 우리들은 모두 끌고 다니는 짐들도 하나씩 가지고 있던 터였으니, 다같이 타기엔 무리였다. 갑자기 나타났던 젊은 계집들이 ‘밀어 밀어’하며 웃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우리 일행은 다음에 타자고 내렸고, 두 노부자와 젊은 아이들이 타고 내려갔다.

잠시후 엘리베이터가 올라왔는데 그 계집 아이들이 그대로 있었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만 했었다만 … 우린 몰랐었다. 그렇게 다시 꽉찬 상태로 탄 엘리베이터 속, 나는 도둑 방지용 가방이라는 선전을 듣고 산 가방을 앞으로 매고 있었고, 그 가방안에는 우리 일행 네 명의 여권과 내 신용카드와 아직 환전하지 않은 우리들의 여행 경비가 들어있었다. 계집아이 하나가 나를 밀치는 통해 싸한 느낌이 들어 밀어내며 가방을 꼭 움켜 잡았었다.

이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문 앞에 서 있던 경찰 두 명이 물었다. ‘안전하신가요? 문제 없으신가요?’ 그 순간 계집아이들은 후다닥 튀였고 바닥엔 아내의 빨간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내가 꼭 쥐고 있었던 도둑 방지용 가방은 약 1/3 쯤이 열려 있었다. 잠시 식은 땀이 주욱~  다행히 잃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만, 그 노부자는 현금 이백달러를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잃어 버렸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철을 타기 전 그 짧은 시간에 비명 소리를 지르는 피해자와 앞에 있는 이의 등짐 속에 손이 들어 갔다 나오는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참 주저 않고 싶은 현장이었다.

로마역에서 내려 내 눈길을 처음 끈 것은 멀리 언덕 위에 있는 황금빛 예수상이었고….. 그리고 소매치기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을 향하면서도 우리들은 그 소매치기 현장을 이야기하며 그저 조심 조심이었다.

우리는 박물관을 안내하기로 한 안내원을 기다리며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초입 사거리에 위치한 식당 야외 테이블에서 늦은 점심을 마치고 차와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아내가 ‘어머~ 어머 !’를 연발하며 ‘저거 좀 보라!’고 다그쳤다. 우리 일행의 눈길이 닿은 곳은 바티칸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사거리 한쪽 끝에서 마치 소처럼 굵은 오줌발을 내갈기고 있는 사내였다. 사거리엔 오가는 차량 뿐만 아니라 박물관을 드나드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우리처럼 식당이나 카페 바깥 테이블에서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냥 녀석의 튼실한 고추를 직관할 수 있는 거리였다. 차마 사진을 찍진 못했다만 녀석의 그 늠름한 못난 표정은 내 기억 속에…. 놈과 같은 놈들 소식을 뉴스 속에서 매일 매일 얼마나 많이 보고 사는지…

그야말로 댄디한 회색 양복 차림에 썬그라스를 낀 녀석은 오줌을 갈기며 사방을 천천히 휘둘러 보기도 했는데, 마치 제 놈이 다윗상인 듯 놀며 그 짓을 끝낸 녀석은 아우디 차를  몰아 휑하고 떠났던 것이다.

옛사람들은 벌거벗은 아름다움을 돌에 새겼건만, 그걸 보고 자란 이즘 애들은 추한 것들만 보고 몸에 익혔나보다. 무엇보다 화장실에 너무 노랭이 짓 하는 문화 탓일 수도 있겠고….

삼천 년 이어 온 이야기의 도시 로마를 만나기 전에 우리들은 우리들만의 이야기들을 겪었다.

아하! 로마! 그 성(聖)과 속(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