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쉰 하루

며칠 전부터 4인치 정도 눈이 더 내린다는 예보는 어제 오후부터 호들갑을 더해 6인치 정도를 예상한다는 문자로 전해졌다. “에이, 핑계 김에 우리도 하루 쉬어 갑시다.”

그렇게 하루 가게 문 닫기로 하고, 조금은 게으르게 맞이한 아침은 참 고요했다. 어쩜 이 고요함은 늘 이어 왔을게다. 다만 아침 분주한 소리를 만들어 이 고요함을 느끼지 못한 것은 분명 내 탓일 터였다.

눈 내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본 게으른 아침에 감사를!

쉰다고 아직 늘어질 나이는 아니어서 이 땅에 살기 위해 최소한 해야만 하는 서류 정리들도 좀 하다가, 아내와 내 입을 위하여 손품 파는 재미도 누려본다.

꾸준한 놈 당할 재간 없다더니 쌀가루 뿌리듯 내리는 눈이 온종일 내려 족히 6인치를 채울 모양이었다.

눈은 그치지 않았지만, 더 쌓이기 전에 좀 치워 놓아야 내일이 좀 편할 터. 이젠 삽질도 쉬엄 쉬엄 그냥 즐기듯 해야 할 나이.

건너 건너 집 snow blower로 눈 폭포 만들며 눈 치우는 사내를 보며 혼자 중얼 거려 보는 소리, ‘에이, 이사람아. 눈 치우는 건 그냥 운동인데. 암만 그냥 삽질이지. 뭔 snow blower람!’

근데 이건 또 뭐람! 이웃 집 나이 들어 장가 안 간 아들 걱정 들을 때면 함께 안타까워 했던 나였는데, 오늘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눈 치우는 것이 그렇게 부러웠다는.

머리 흔들며 정신 차릴 때마다 혼자 해보는 소리다만 내 맘은 왜 이리 간사한 것인지? 왈 종심(從心) 나이라 했거늘, 정신적 자람이 아직 내 맘 따라 갈 나이엔 이르지 못했나 보다.

그런데 몸은 이미 나이를 다 쫓아가, 아니 어쩜 더 나아 간 지경에 이른 것인지 몰라 그저 천천히 땀 식혀가며, 어둠 찾아 들기 전 쉴 곳 찾아 빠른 날개 짓 하는 새들에게 응원도 보내면서 천천히 천천히 눈을 치웠다. 눈은 이내 그 치운 자리를 또 다시 덮었지만.

저녁에 이즈음 몇 장씩 넘기던 책을 마무리해 읽었다. 역사학자 나타샤 티드가 쓴 <세계사를 바꾼 50가지 거짓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역사적 거짓말들을 만든 주체들은 대개 당대의 권력자들이다. 정치, 경제, 군사, 종교, 문화의 권력자들, 19세기 이후로 그보다 더 큰 권력자로 등장하는 언론까지.

이 거짓말들이 낳은 후과(後果)는 슬프게도 사람들의 죽음이었다. 그것도 한 두명의 죽음이 아니라 작게는 수백, 수천에서 많게는 수 백만, 수 천만에 이르는 당대 사람들이 겪은 이른 죽음이었다.

그 거짓이 거짓으로 드러나는데 걸린 시간은 길게는 이천 년에서 수 백 수십년 또는 오늘도 이어지는 일이란다.

단, 이 책의 허점 한가지. 바로 그 거짓을 드러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삶을 바쳤던 사람들이 이끌어 온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쓰여지고 있는 이야기들, 거짓말과 그에 대항하여 싸우는사람들을 생각하며 읽어야 좋은 책 한 권.

잘 쉰 하루. 오늘을 허락해 주신 신께 감사하는 밤에.

*** <이제 신문사는 자신들의 편견을 뒷받침하는 선정적인 기사를 만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할 뿐이다.>  – 이 책 ‘제4장 19세기’를 여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