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초 며칠은 분주하게 시간에 쫓긴다. 늘 시간이 빠듯한 구멍가게 주인들이 모두 겪는 일 아닐까? 아님 단지 이어지는 내 게으름 탓 일런지도 모르겠다. 지난 한 해 쌓인 이런저런 서류 및 문서 정리와 함께 새해를 준비하는 계획들로 새해 첫 주가 훅 지나갔다.
내친 김에 맞을 거 다 맞고 가라는 것인지, 아내와 내 자동차 등록갱신은 물론 내 운전면허 갱신 더하여 가게 리스 갱신까지 모두 올 일월에 처리하게 되어 있어 마음이 두루 바빴는데 생각해보니 그 또한 감사였다. 무릇 맞을 매란 한꺼번에 맞으면 좋은 법 아닐까?
개인적인 일들을 그러하되, 뉴스들은 지난 해나 새해나 그저 답답하다. 아니 답답함이 새해들어 더해졌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
그 답답한 마음으로 다시 꺼낸 든 책, 스티븐 핑커( Steven Pinker)가 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이다.
“내가 이 책에서 이해하려는 주제는 가정에서, 이웃에서, 부족 간에, 무장 세력 간에, 민족과 국가 간에, 그야말로 온갖 차원에서 진행되어 온 폭력 감소 현상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뉴스로 답답해진 마음을 풀어주는 책이다.
어제 오늘, 이 책의 진수라 할 8장(내면의 악마들)과 9장(선한 천사들)을 꼼꼼히 음미하며 정독했다.
읽으며 되씹고 싶은 대목 중 일부이다.
<인간의 폭력은 대부분 비겁하다.>
<양측(가해자와 피해자)은 경쟁적인 시점에서 정보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측정하는 달력도 서로 다르고 역사적 기억에 부여하는 중요성도 서로 다르다. 피해자는 근면한 역사가이자 기억의 육성자이다. 가해자는 실용주의자이고 현재에 굳게 뿌리 내린다. 우리는 보통 역사적 기억을 좋은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기억되는 사건이 채 아물지 않은 상처라면, 그래서 시정이 요구되는 일이라면, 기억은 폭력에의 호소가 될 수 있다.(이 때 폭력은 대개 가해자에 의해 발생) >
<폭력의 첫 번째 종류는 실용적, 도구적, 착취적, 포식적 폭력이라고 불러도 좋다. 두 번째는 우세 충동(제 잘 남에서 일어나는) 세 번째는 복수심, 네 번째는 가학성, 다섯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폭력의 원인은 이데올로기이다.>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 보다 그들을 연구하는 학자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가해자들은 늘 자신의 행동을 남에게 자극 받은 것, 정당한 것, 비자발적인 것,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포장하는데 쓸 갖가지 변명의 술책들을 갖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완곡어법이다.(이른바 말장난… )>
<도덕감각을 못 쓰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는 피해자를 헐뜯는 것이다. 어떤 집단을 악마화하고 비인간화하면 그 구성원들을 쉽게 해치게 된다.>
<이데올로기에는 치료약이 없다.>
<온 나라가 유해한 이데올로기에 전염되는 현상을 확실히 막을 방법은 없지만, 예방책은 하나 있다. 바로 열린 사회다.>
<정치 지도자와 정부 관료가 감정 이입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래서 친척과 벗에게만 다정하게 특권을 나눠 준다면, 낯선 사람들에게 냉정하게 분배할 때보다 사회에는 큰 해가 된다.>
<자신이 최대의 이득을 얻고자 남들을 해치는 일은 아무리 작은 피해라도 추한 짓이라는 것을, 바로 그가(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이성, 원칙, 양심, 짐승 속에 거하는 존재. 내면의 인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위대한 재판관이자 결정권자) 우리에게 알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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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게 리스를 연장한다고 해도 몇 년을 더 일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제 아무리 백세시대를 노래한들 그게 내 노래는 결코 아닐테고, 이제부터는 신의 은총에 기댈 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깊어지므로.
다만 내 내면의 악마들과 싸워 이기고 내 마음 속 선한 천사들의 힘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좋은 세상을 위해 기도라도 할 수 있다면…그 때까진 살아도 좋지 않을까?
기도처럼 조금이라도 흉내 내며 사는 한 해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