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에 – 2

어머니와 딸. 한국전쟁 통에 가족의 반을 잃은 어머니는 기지촌의 아픈 기억을 안고 백인 남편의 고향 미국 서부 아주 보수적인 시골 마을로 이민을 온다. 아버지가 다른 오빠와 함께 한국에서 ‘튀기’로 놀림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딸은 어머니를 따라 온 미국 땅에서 ‘노랑이 혼혈’ 이민자 취급을 받고 자란다. 오빠는 그래도 ‘한국에서 받은 차별 보다 여기(미국)가 낫다’는 생각을 드러내곤 한다.

꿋꿋하게 새로운 삶에 적응해 나가던 어머니에게 정신병(조현병 調絃病, Schizophrenia)이 찾아온다. 어머니가 정신줄을 놓았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을 돌아보는 딸의 기록이다.

<수십 년이 지난 후 나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이 순간을 내 한(恨)의 시발점으로 여기게 된다. 한이란 “불의에 대한 풀리지 않는 억울함”이자 “맺혀서 풀리지 않는(…) 멍울”, “응어리진 비통함을 가리키는 번역 불가능한 한국어다. 한은 지속되는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 그것이 풀리지 않는 상태를 지칭할 뿐 아니라, 그 풀이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딸은 어머니의 죽음을 세 번 맞는다. 어머니가 정신병이 들었을 때, 어머니가 기지촌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리고 마지막 어머니가 육체적 죽음을 맞았을 때이다.  

딸은 어머니의 첫번 째와 두번 째 죽음을 사회적 죽음이라고 이르면서 그 죽음의 원인를 쫓아간다. 그 이야기를 담은 책 <전쟁 같은 맛>은 한(恨)을 곱씹듯 아리고 쓰리다.

딸이 그 죽음의 원인을 쫓다가 토로하는 단말마(斷末魔)이다. “진실은 너무나도 복잡했다.”고.

어머니와 딸의 교감 통로는 음식 만들기와 식탁이다. 4부 15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새로운 부가 시작될 때마다 그 부에서 이야기하려는 내용을 대신하는 인용문을 소개한다.

제4부를 여는 인용문 중 일부이다. <우리는 이 식탁에서 아이를 낳았고, 부모를 묻을 준비를 했다. 이 식탁에서 우리는 기쁨으로 노래하고 슬픔으로 노래한다. 고통과 후회의 기도를 올린다. 감사를 드린다. 어쩌면 세상은 식탁에서 끝날는지도, 우리가 울고 웃으며 마지막 달콤한 한 조각을 베어 무는 사이에.>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내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 여러 번 찔금 흘렸다. 삼팔선을 넘은 것은 달랑 오누이 뿐이었다. 전쟁이 나자 오빠는 고향을 찾아 간다며 어린 누이를 지인에게 맡기고 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감감무소식 행방불명이 되었다. 어린 누이를 맡겨 놓은 곳은 접경지역이었던 기지촌 인근. 천만다행으로 어린 나이에 미군 부대에서 일하던 이웃 청년 어머니 눈에 들어 신랑 만나 해로하셨던 내 장인 장모.

아직 다 지우진 못한 우리 내외와 아이들의 이민생활 응어리, 음식 대접하고 나눠 주시길 즐겨하셨던 어머니 역시 당신이 살아계심을 증명코자하는 몸짓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이즈음의 아버지 식탁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생각이 겹쳐.

딸이자 책의 저자인 그레이스 조가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묻는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의 개념인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는….게 무슨 뜻인지 기억나는 사람?’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설명.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란 무력으로가 아니라 문화적 신념이나 실천으로 규범을 규제하도록 설계된 제도를 말해요. 경찰이나 군대 같은 ‘국가기구’는 무력으로 사회를 규제하죠. 반면 언론이나 학교 같은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는 생각을 통해 규제해요.”

양공주, 국제결혼자, 이민자, 정신병자 등등 규제되어 버린 생각의 틀에서 정형화되어 따돌림 당하는 예들일 것이다.

이쯤 다시 쓸모있음에 대한 생각들.

그저 내가 사는 곳에서 오늘 부딪치는 일들에서, 어떤 분야에서 건 간에 내 생각의 틀을 옥죄어 나를 통제하려는 힘에 대항하고 항거하고 싸워 이겨 나가는 일, 바로 쓸모 있는 일 아닐까?

내 세탁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