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농사 짓는 친구 안병덕이 짧게 짧게 가르쳐 주는 식물과 사람살이 강의 재미가 쏠쏠한 이즈음이다. 산업공학과 전산 쪽을 공부하고 이른바 대기업에 입사해 그 계열사 중 한 곳에서 최고위직까지 지낸 그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게 족히 25년은 되지 않을까?

매사 성실했던 어릴 적 모습 그대로 그는 오늘도 농사 짓는 일에 충실하다. 이제 그는 식물과 사람살이 역사, 나아가 사람과 식물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가르친다.

어제 그에게서 배운 것 하나.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벼나 밀, 옥수수 등과 같은 벼과에 속하는 식물 곧 풀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그 가르침 읽고 ‘아하! 그랬구나.’하며 몇 년 간 했던 내 고생을 떠올리며 웃었다.

나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과 전나무 그리고 대나무를 키웠었다. 개나리, 진달래와 함께 그들은 내가 마치 서울에 사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곤 했다. 문제를 일으킨 건 대나무였다. 대나무의 번식과 생장 속도는 생각보다 엄청 빨랐다. 급기야 이 놈들이 경계를 넘어 이웃 집을 침범하고 말았다. 그게 주법(州法)을 위반한 일이었음을 그제야 알았었다. 대나무는 땅 속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부랴부랴 대나무를 다 자르고 그 뿌리조차 없애는데 무려 4년이 걸렸다.

내 친구 안병덕이 대나무의 번식력과 생장속도 그리고 끈질긴 생명력을 다시 생각 하게 했다. “아하 그게 풀이였구나!”

농사 짓는 친구가 또 하나 있다. 경북 봉화에서 각종 농사를 다 짓고 있는 오시환이다. 대기업 홍보파트에서 잘 나간다고 알고 있었던 그를 뉴욕 한인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게 아마도 거의 이십 년 넘는 일일게다. 그 때 나는 ‘설마?’했었다. 그가 식당 주방을 들락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 밤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또 헤어졌다.

그가 봉화에서 농사 짓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은 페북을 통해서였다. 그는 내가 아는 한 삶을 즐기는 참 농사꾼이다. 그는 작가이자 화가, 사진가이자 한글 운동가, 제법 도튼 불자이자 사회 운동가이다. 달 포 전 한국여행 중 봉화를 들리지 못한 게 아직도 아쉽다.

그는 종종 풀과 놀고 풀과 싸우는 모습을 페북에 올리곤 한다. 문득 그가 풀 같은 생각이 든다. 마치 대나무 같은.

땅이 아니라 사람 마음 밭 갈아 좋은 세상 만들어 보자고 밭갈이 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대전 대화동에서 목회하는 목사 김규복이다.

‘왜 그럴까? 왜 그 젊은 시절 지녔던 생각들 다 버리고 바뀌었을까?’ 그가 세태를 한탄하며 굵은 눈물 한 방울 뚝 떨구었다. 그는 그냥 앓고 있는 병 탓에 떨군 눈물일 뿐이라고 했다만, 가슴에 차마 터트리지 못한 눈물 보따리 하나 안고 사는 듯 했다.

허나 그는 결코 그 보따리 터트리지는 않을 듯. 그 보따리는 그 밭을 일구는 거름인 것을. 이쯤 그는 대나무 농사꾼.

아직은 아닌 듯 싶은데 밤운전으로 이웃 도시 필라델피아를 오가는 일이 버겁게 느껴진 어제였다. 아마 빗길과 짙게 깔린 밤안개 때문일 뿐, 나이 탓이라고 생각하기엔 이르다.

살며 뜻 맞는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처럼 즐거운 일이 무에 있으랴! 민주, 평화, 통일 나아가 사람사랑 운동으로 반 백년 이민 생활을 일관하고 있는 김경지선생, 이민자들 권익과 다음세대 바르게 터 닦는 일에 전심하는 참 좋은 벗 이종국, 김성규를 비롯하여 세월호,이태원 참사의 아픔을 공유하며 정말 좋은 세상이 되는 우리들의 모국을 꿈꾸는 필라 민주동포 모임의 벗들과 함께 한 좋은 시간을 다시 새기며.

암만, 우리 모두 울타리 필요없이 뿌리 얽히고 설켜 빠르게 세를 키워 좋은 세상 영역을 넓히는 대나무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