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에 -1

몇 해 전 어머님 돌아가셨을 때에도 눈물 나오지 않아 이젠 눈물샘 말랐구나 했었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주말 사흘 눈물 질금질금 흘리며 보냈다.

영화 두 편과 소설 한 권을 읽으면서다. 기자다운 기자(記者) 이상호가 만든 영화 전투왕, 이즈음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과 그레이스 조가 쓰고 주혜연이 번역한 책 <전쟁 같은 맛>들이다.

영화 전투왕은 기자 이상호가 반란 수괴 전두환을 서른 해 넘게 쫓아다닌 기록과 함께 ‘왜?’ 그가 그리 행동했는가를 그린 영화이다. 이상호가 쫓은 것은 전두환 개인이 아니었다. 전두환이라고 일컬어지는 하나의 큰 세력의 본색을 드러내고자 하는 쫓음이었다. 영화 속 이상호나 현실의 이상호나 오늘도 여전히 큰 벽에 가로막혀 마치 그의 기자 노릇이 허망한 듯 여길 수도 있겠다.

영화 속에서 이상호는 연세대 정문 앞에 놓인 이한열 표석을 설명한 뒤, 이한열 열사가 쓰러진 몇 발작 뒤 당시 그가 도망치듯 서 있던 자리를 지적하며 ‘여기엔 도망자의 표석을 세워야…’라며 아픈 마음을 표한다.

평생 기자다운 기자로 살아가는 정말 쓸모 있는 기자 이상호의 시작은 이한열 죽음의 뜻을 품기 시작한 때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자칫 허망할 듯이 이어져 온 그의 몸짓들이 정말 쓸모 있는, 기록될만한 기자 정신이었음을 기릴 날이 곧 올 수 있기를…

다른 시간, 같은 장소에 서 있었던 추억이 겹쳐 몇 차례 눈물 찔금.

그리고 영화 <서울의 봄>.

왜 필라 나들이만 하면 날이 이리 궂은 지! 영화를 보고 내려오는 길,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쏟아져 자꾸 나이 탓을 하며 내려왔다.

영화는 영화일 뿐.

지나치게 전두광과 이태신이라는 인물 중심으로 흐른 영화적 상상은 자칫 당시 쿠데타 세력과 동조세력, 그리고 눈치 빠르게 권력에 기생하는 집단을 묘사하는 데는 조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신의 마지막 대사. “넌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

이 영화를 만든 이가 뱉고 싶은 말 아니었을까?

쓸모없는 인간에 대한 규정!

눈물 흘릴 구석 없는 영화인데 두 차례  찔금 찔금.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그리고 소설 <전쟁 같은 맛>

이 이야기는 길게 써야 마땅하겠다만 단지 “쓸모”에 대하여.

저자 그레이스 조의 어머니가 삶이 무너져 가는 순간에 던진 “이젠 쓸모없다.”라는 한 마디를 되새기는 대목이다.

<여러 해에 걸쳐 나는 무엇이 엄마를 쓸모 없다고 느끼게 했는지. 그 원인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줄 작은 조각들을 모으고 또 모았다. 사람이 아닌 사물 취급을 받으며, 엄마는 당신 삶이 쓸모 없다는 메시지에 둘러싸여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건 주변사람들이 한국 사회가 심지어 당신의 가족이 보낸 메시지였다. 엄마는 한국을 탈출했지만 미국 사회에서도 당신이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쓸모없다’던 엄마를 통해 ‘쓸모 있는 삶’에 대한 학구적 노력을 하게 된 주인공 이야기에 시간과 공간을 많이 겹쳐 살아온 내 생각으로 여러 번 찔금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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