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이 귀향일까?” 16박 17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아내가 내게 던진 물음이었다. “글쎄…” 나는 그 물음에 엉거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서울 나들이는 분명 우리 내외에게 고향을 찾는 일이었지만, 다시 돌아와 수북히 낙엽 쌓인 내 뜰에서 다알리아 구근을 거두는 여기가 오늘의 내 고향일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애 5년, 결혼 40년 – 그 긴 시간 동안 아내와 보름 넘는 시간을 함께 여행해 본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딱히 우리 내외의 삶이 팍팍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우리 세대 보통 사람들의 경우와 엇비슷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아내의 물음에 나는 “글쎄…”라고 응답하며 “어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귀향 아닐까?”하는 말장난 같은 헛소리를 덧붙이긴 했었다만, 내 솔직한 마음은 이번 여행이야말로 귀향 여행이자, 반 백 년 이쪽 저쪽을 오가는 멋진 시간 여행이었다.
삶이 늘 그렇듯이, 부모님이 채어주지 못한 허전한 구석을 늘 채워 주시던 하나 밖에 없는 내 고모님의 마지막 길, 생각할수록 웃음이 이어지는 후배의 너무 이른 마지막 길, 멋지게 늙어가는 후배 아버님 부고 까지 슬픔, 아픔, 아쉬움도 함께 한 인생 여행이었다. 왜 또 그리 아픈 이들이 많은지? 소식 들으며 그저 안타까울 뿐. 그저 우리들의 나이를 확인할 밖에. 아하! 성가(聖歌)하면 떠오르던 이름이었는데, 나이 탓이 아니라 병 탓에 더는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는 이야기엔 진한 아픔이.
이제 한 두 손가락 꼽을 정도 만큼 남은 나와 아내의 집안 어른들도 찾아 뵙고, 중고등 대학 동창들도 만나고, 만나 그저 반가운 옛 친구와 옛 길을 따라 걷고, 아내와 단 둘이 해돋이 맞는 짧은 여행도 즐기고, 딸과 사위 앞세워 걷고 즐기는 그야말로 꿈 같은 시간이었다.
우리 내외를 이제껏 지켜 준 고향의 정기 랄까, 아님 믿음의 뿌리라 할까? 신촌 대현교회 옛 친구들과의 만남은 이번 여행의 절정이었다.
여행 첫 날, 대현교회에서 만난 옛 친구들 그저 얼싸 안을 만큼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그날 설교를 했던 홍길복목사님 – 그 날 그의 차분하지만 변함없이 단정적인 어투의 설교를 들으며 사십 오륙 전 그가 전했던 설교 제목을 떠올렸었다. 솔직히 설교 내용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날의 설교 제목은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그 제목은 ‘사랑, 사랑, 사랑입니다.’였다.
아마도 성서의 정신, 예수의 정신을 강해한 설교가 아니었을까 한데… 어쩌면 성탄절 설교 였던 것도 같고…
아무튼 이번 우리 부부의 시간 여행길에서 얻어 곱씹는 말은 비록 진부하다 할지라도 바로 ‘사랑, 사랑, 사랑’이다.
신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오늘의 내 삶에 대한 사랑.
이 쪽이면 어떻고 저 쪽이면 어떠랴! 무릇 모든 귀향은 사랑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