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표 운동화

운동화를 하나 샀다. 딱히 내가 가난하거나 검소한 때문이 아니라, 입성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편인지라 옷이나 신발 등속은 그저 편하면 대만족이다. 한번 좋다 싶으면 다 헤어져 꿰메 입고 걸칠만큼 가까이 두고 사는 편이다.

지금 신고 다니는 운동화는 뒷굽이 거의 달아 없어질 만큼 신었으니  족히 오년은 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내가 검소하거나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 사이 몇 켤레 새 것들을 사놓고도 신지 않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불편해서다.

오늘 산 운동화는 제법 마음에 들게 편하다.

새로 산 까만색 운동화를 신고 떠오른 아주 오래된 옛 생각이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때 줄곧 신고 다녔던 운동화는 말표 운동화였다. 고등학교 때는 학생화라고 해서 가죽구두를 신고 다니던 아이들도 있었다만, 나는 줄곧 까만색 말표 운동화였다. 학교에서는 그런 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교회였다. 일요일에 교회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많이 달랐다. 다니는 학교들도 서로 달랐고, 아무래도 편한 일요일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입성들 차이가 눈에 띄곤 했었다.

그 때만 해도 나이키 등속의 외국 브랜드는 커녕 국제상사의 프로스펙트 등의 국산 브랜드도 나오기 전이었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겠다만, 그런 브랜드 제품을 흉내낸 유사 제품 운동화를 신고 교회에 오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그 무렵 어느 날이었다. 또래 계집아이 하나가 제 친구에게 나직히 소근거리는 소리를 들었었다. “재는 촌스럽게 맨날 말표 운동화야!” 나를 향한 소리였다.

예나 지금이나 ‘촌스럽다’는 말이 내겐 거슬리지 않아, 까만색 말표 운동화를 신고 다니며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 아이와 같은 대학교를 다니며 때때로 흰색 말표 고무신을 신고 다니곤 했었다.

오십 년 세월도 훨 지난 옛이야기다.

어찌어찌 오십 년 전 그 옛 친구들을 한 번 만날 요량이다.

말표는 아니다만 까만 운동화를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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