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딸

이틀 먼 길 다녀 돌아온 밤, 삶과 죽음 그리고 신(神)에 대한 생각에 잠겨본다.

달포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애틀란타에 사는 매제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평소 건강 하나는 자신할만한 사람이었기에 그 소식 듣고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었다. 한 주 후에 들려온 소식은 매우 심한 중병 상태로 치료 과정에 들어섰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 주가 지나자 병원의 모든 치료를 중단했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큰 일 당하기 전에 가서 얼굴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어제 아침 비행기를 예약 했었다. 그러다 지난 수요일 들려온 소식,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우연이었지만 내 비행기 예약시간은 매제의 장례예배 시간에 딱 맞추어 있었다.

그렇게 매제가 떠나간 모습을 보고 돌아 온 밤이다.

일남 삼녀, 우리 네 형제 부부 여덟 가운데 가장 먼저 떠난 사람이다. 나이 일흔 둘. 이제 우리 세대 차례가 된 모양이다.

오늘 아침, 매제의 손길 하나 하나 가까이 느낄 수 있었던 그가 가꾸어 온 뜰을 걸으며 매제의 삶과 죽음, 그를 떠나 보낸 여동생과 조카 딸, 손녀, 손자 – 그 개개인의 삶에 간섭하시고 함께 하시는 신에 대한 생각에 빠졌었다.

오늘 두어 시간, 조카와 함께 먼저 떠난 아빠와 남은 엄마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들은 내 일생 귀한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그 참 좋은 시간을 허락해 주신 신께 감사 드리는 밤이다.

삶과 죽음은 하나로 연결되어진 과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만, 죽음은 여전히 아픔이고 슬픔이다.

매제의 자랑이었던 조카딸을 위해 기도 드리는 밤에.

말표 운동화

운동화를 하나 샀다. 딱히 내가 가난하거나 검소한 때문이 아니라, 입성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편인지라 옷이나 신발 등속은 그저 편하면 대만족이다. 한번 좋다 싶으면 다 헤어져 꿰메 입고 걸칠만큼 가까이 두고 사는 편이다.

지금 신고 다니는 운동화는 뒷굽이 거의 달아 없어질 만큼 신었으니  족히 오년은 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내가 검소하거나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 사이 몇 켤레 새 것들을 사놓고도 신지 않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불편해서다.

오늘 산 운동화는 제법 마음에 들게 편하다.

새로 산 까만색 운동화를 신고 떠오른 아주 오래된 옛 생각이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때 줄곧 신고 다녔던 운동화는 말표 운동화였다. 고등학교 때는 학생화라고 해서 가죽구두를 신고 다니던 아이들도 있었다만, 나는 줄곧 까만색 말표 운동화였다. 학교에서는 그런 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교회였다. 일요일에 교회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많이 달랐다. 다니는 학교들도 서로 달랐고, 아무래도 편한 일요일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입성들 차이가 눈에 띄곤 했었다.

그 때만 해도 나이키 등속의 외국 브랜드는 커녕 국제상사의 프로스펙트 등의 국산 브랜드도 나오기 전이었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겠다만, 그런 브랜드 제품을 흉내낸 유사 제품 운동화를 신고 교회에 오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그 무렵 어느 날이었다. 또래 계집아이 하나가 제 친구에게 나직히 소근거리는 소리를 들었었다. “재는 촌스럽게 맨날 말표 운동화야!” 나를 향한 소리였다.

예나 지금이나 ‘촌스럽다’는 말이 내겐 거슬리지 않아, 까만색 말표 운동화를 신고 다니며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 아이와 같은 대학교를 다니며 때때로 흰색 말표 고무신을 신고 다니곤 했었다.

오십 년 세월도 훨 지난 옛이야기다.

어찌어찌 오십 년 전 그 옛 친구들을 한 번 만날 요량이다.

말표는 아니다만 까만 운동화를 신고.

  • 지난 주일에 거둔 글라디올러스 구근들을 말리고 정리하여 보관하다. 내년 여름을 위하여.
  • 올 늦봄에 거둔 튤립 구근들을 심다. 내년 봄을 위하여.

난국 亂局에

지난 한 주간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기분 좋게 시작했던 월요일이 지나자 아내가 몸이 좀 이상하다고 했다. 그렇게 아내는 두번 째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앓았다. 일이 꼬이는 데에 특별한 까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사람사는 일일 뿐.

아내가 눕자 기계 고장이 동시에 일어나 가게 일이 엉망으로 꼬여 버렸다. 이즈음은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세탁기계 수리업자들을 제 때 부르는 일도 어렵다.

일은 계속 쌓여 가는데 손님들과의 약속은 제 때 지켜내지 못하니, 일에 대한 강박은 뒤로 미루더라도 불만을 토해 내는 손님들을 감당하는 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 주간을 보냈다.

두려운 것은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르니 아직 나는 한창 일하고 배울 나이다.

하루 사이 기온이 뚝 떨어져 옷을 껴 입고 뜰 일을 하다. 여름 내내 뜰을 화사하게 꾸며 주었던 글라디올러스 구근들을 거두었다. 다음 주에는 튜립 등 봄을 위한 구근들을 심어야겠다. 신이 날씨를 허락해 주신다면.

아내는 아직 코로나 양성 반응을 보이고 있고, 가게 일도 정상으로 돌아가려면 하루 이틀 더 걸릴 듯하다.

* 오늘 오후에 필라델피아 좋은 벗들이 함께 하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대한민국 윤석열 정권 타도 모임에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

** 모든 난국이란 끝이 있기 마련!

시월에

시월, 가을이다.

딱히 곰곰 따져 볼 일도 아니다. 모든 계절은 늘 오자마자 가버렸다. 이 가을도 역시 그럴 것이다.

하여, 오늘이야말로 내가 살아있음에 대해 감사하고 즐거워 할 일이다.

이제 누구나 다 겪으며 갔던 길, 늙음, 아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만나게 되는 길목 초입에 들어서는 나이지만, 아직 내 코 앞에 다다른 일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꿈꾸어 본다. 그저 이제껏 살아왔듯 두려움보다는 감사함으로 이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오늘,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계절을 맘껏 누리고 사는 하루를 위해  아내와 함께 가을 정원을 걸었다.

이런 날엔 내 일상 속에서 살아 숨쉬며 나와 함께 하는 신을 만나곤 한다. 그래 또 감사다.

내 뜰에도 가을이 내려앉아 머문다.

아름다운 날, 가을이다. 비록 또 떠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