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여름이 부린 심술이었다. 연일 95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한 주간을 보냈다. 지친 몸과 맘 추수리라는 위로처럼 어제 오늘 비가 추적인다.
조금은 느긋한 게으름까지 즐기며 읽은 책,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가 쓴 <좌파의 길/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이다. 원제는 그냥 <식인(食人) 자본주의, Cannibal Capitalism>이건만 구태여 ‘좌파의 길’이라고 명한 역자의 의도는 너무 나간 듯 하다. 물론 꼼꼼히 달아 놓은 역자의 주석들은 칭찬할 만하였다.
오늘 내가 사는 세상을 ‘식인 자본주의’체제라고 명명한 저자는 이 시스템으로 인해 인류는 멸종 직전에 놓여 있다고 주창하며, “우리는 끝장 났는가?(Are we toast?)”라는 물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경제체제로 한정 지어 이해하는 한,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위기와 모순들을 해결할 방안을 찾기 어렵다며, 자본주의를 옛날 봉건체제처럼 ‘제도화된 사회 질서(an institutionalized societal order)’로 이해해야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착취, 수탈, 인종주의, 식민화, 페미니즘, 생태, 자연, 환경, 국가, 금융, 부채, 정치 위기 등등 자칫 머리 아프게 느낄 만한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특별히 제3장 <돌봄 폭식가: 생산과 재생산, 젠더화된 위기>는 출산, 육아, 교육, 의료, 노인문제에 이르는 이른바 사회보장에 대한 현 자본주의 체제의 폭식성과 위험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이끌어 준다.
또한 이른바 슈퍼펀드(Superfund)로 잘 알려진 미국 내 폐기물 오염 정책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은 그 정책으로 직격탄을 맞는 내 생업인 세탁업의 현실을 생각하며 고개가 절로 끄덕거리게 하였다. 돌봄 문제와 마찬가지로 비록 진보적인 국가 자본주의적 규제가 자칫 ‘가난한 공동체들(전부는 아니지만 다수는 유색인 공동체였다)’에게 책임을 떠안기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는 것이다.
에필로그인 <펜데믹, 식인 자본주의의 광란의 파티>는 지난 삼사년 간 내 생활현장에서 겪은 일들과 연관되어 있어 저자가 말하는 ‘식인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저자는 마지막 장인 제6장 <진정한 대안의 이름으로: ‘사회주의’의 재발명>에서 ‘식인 자본주의’를 벗어나 사람들이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사람 답게 살 기회를 만들 제안들을 하지만, 그가 “아직 가설에 머물러 있다.”라고 고백할 만큼 명쾌함은 담지 못했다.
트럼프와 바이든을 벗어 나지 못하는 오늘날 미국을 향한 저자의 개탄과 함께 이런 미국을 쫓지 못해 안달하는 가히 광기에 휩싸인 윤석열 집단까지 생각나 책장을 덮으며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였지만, 이 암울한 시대를 이겨내고자 머리를 맞대고 오늘을 고민하며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차고 넘치니 또 희망을.
**엊그제였다. 해가 쨍쨍 이글거리는 대낮에 내 일터 저편 하늘에 큰 무지개가 떳었다. 신기했다. 잠시 후 가게에 들어선 손님 하나가 하는 말, ‘윌밍톤에는 비가 엄청 내렸다네요.” 내 가게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곳에는 비가 많이 내렸단다. 내가 서 있는 곳에는 해가 쨍쨍했건만.
무지개- 무릇 신과의 약속이란 신이 그렇게 약속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만 현실이 되는 법이다. 하여 믿음이고 신앙인데… 옛사람들 발끝에도 닿지 못할 저열하고 치졸한 욕망들을 믿음으로 치부하는 한, 무지개란 그저 허망한 일시 치장일 뿐.
*** <기나긴 인종주의 역사에서 이 말(식인食人)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묘사하는데 주로 쓰였는데, 실은 이들이야말로 오히려 유럽 제국주의의 식인적 약탈의 희생자들이었다.>-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