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침 하늘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날은 참 기분이 좋기도 하기도 하지만, 한 켠으론 왠지 불안한 마음이 꼬리를 달곤 한다. 그냥 늘 그런 기분일 뿐, 매양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다만.

오늘도 그랬다. 참 멋진 내 일터의 아침 하늘이었다. 더더군다나 가을 아침의 상쾌한 아침! 그저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가 절로 이는 아침이었다.

내 일상은 특별할 것 하나 없이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그저 그렇게 일에 빠져 지낸 하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마치고 돌아온 저녁까지 딱 무어라 찍어 말할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이 이어진 하루였다. 딱히 불안한 기색을 느낄 조차 없이.

아마 뉴스 탓이었을게다.

조국(祖國)의 조국(曺國)선생 가족과 아수라였던 그 성남(城南)에서 제 정신 하나 세우고 살아온 듯한 정치인 이재명 선생 가족이 한가위에 얼굴 맞대는 시간 누릴 수 있다는 소식에.

혹시나 하여 곰곰 따져 본다. 내가 경험했던 시간들과  옛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며.

맞다! 세상은 아름다운 쪽으로 흘러간다.

그저 불안함은 늘 내 몫일 뿐.

무지개

떠나는 여름이 부린 심술이었다. 연일 95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한 주간을 보냈다. 지친 몸과 맘 추수리라는 위로처럼 어제 오늘 비가 추적인다.

조금은 느긋한 게으름까지 즐기며 읽은 책,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가 쓴 <좌파의 길/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이다. 원제는 그냥 <식인(食人) 자본주의, Cannibal Capitalism>이건만 구태여 ‘좌파의 길’이라고 명한 역자의 의도는 너무 나간 듯 하다. 물론 꼼꼼히 달아 놓은 역자의 주석들은 칭찬할 만하였다.


오늘 내가 사는 세상을 ‘식인 자본주의’체제라고 명명한 저자는 이 시스템으로 인해 인류는 멸종 직전에 놓여 있다고 주창하며, “우리는 끝장 났는가?(Are we toast?)”라는 물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경제체제로 한정 지어 이해하는 한,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위기와 모순들을 해결할 방안을 찾기 어렵다며, 자본주의를 옛날 봉건체제처럼 ‘제도화된 사회 질서(an institutionalized societal order)’로 이해해야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착취, 수탈, 인종주의, 식민화, 페미니즘, 생태, 자연, 환경, 국가, 금융, 부채, 정치 위기 등등 자칫 머리 아프게 느낄 만한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특별히 제3장 <돌봄 폭식가: 생산과 재생산, 젠더화된 위기>는 출산, 육아, 교육, 의료, 노인문제에 이르는 이른바 사회보장에 대한 현 자본주의 체제의 폭식성과 위험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이끌어 준다.

또한 이른바 슈퍼펀드(Superfund)로 잘 알려진 미국 내 폐기물 오염 정책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은 그 정책으로 직격탄을 맞는 내 생업인 세탁업의 현실을 생각하며 고개가 절로 끄덕거리게 하였다. 돌봄 문제와 마찬가지로 비록 진보적인 국가 자본주의적 규제가 자칫 ‘가난한 공동체들(전부는 아니지만 다수는 유색인 공동체였다)’에게 책임을 떠안기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는 것이다.

에필로그인 <펜데믹, 식인 자본주의의 광란의 파티>는 지난 삼사년 간 내 생활현장에서 겪은 일들과 연관되어  있어 저자가 말하는 ‘식인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저자는 마지막 장인 제6장 <진정한 대안의 이름으로: ‘사회주의’의 재발명>에서 ‘식인 자본주의’를 벗어나 사람들이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사람 답게 살 기회를 만들 제안들을 하지만, 그가 “아직 가설에 머물러 있다.”라고 고백할 만큼 명쾌함은 담지 못했다.

트럼프와 바이든을 벗어 나지 못하는 오늘날 미국을 향한 저자의 개탄과 함께 이런 미국을 쫓지 못해 안달하는 가히 광기에 휩싸인 윤석열 집단까지 생각나 책장을 덮으며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였지만, 이 암울한 시대를 이겨내고자 머리를 맞대고 오늘을 고민하며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차고 넘치니 또 희망을.

**엊그제였다. 해가 쨍쨍 이글거리는 대낮에 내 일터 저편 하늘에 큰 무지개가 떳었다. 신기했다. 잠시 후 가게에 들어선 손님 하나가 하는 말, ‘윌밍톤에는 비가 엄청 내렸다네요.” 내 가게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곳에는 비가 많이 내렸단다. 내가 서 있는 곳에는 해가 쨍쨍했건만.

무지개- 무릇 신과의 약속이란 신이 그렇게 약속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만 현실이 되는 법이다. 하여 믿음이고 신앙인데… 옛사람들 발끝에도 닿지 못할 저열하고 치졸한 욕망들을 믿음으로 치부하는 한, 무지개란 그저 허망한 일시 치장일 뿐.

*** <기나긴 인종주의 역사에서 이 말(식인食人)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묘사하는데 주로 쓰였는데, 실은 이들이야말로 오히려 유럽 제국주의의 식인적 약탈의 희생자들이었다.>- 책 속에서

은총에

<아우슈비츠에 갇힌 유대인 집단이 신을 재판에 회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신을 잔혹함과 배신으로 기소했다. – 중략- 그들은 신의 유죄를 선고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랍비가 신의 유죄와 사형 선고문을 발표했다. 그런 후 눈을 들어 재판이 끝났다고 말했다. “이제 저녁기도 시간입니다.”> –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역사>에서


노동절은 공식적으로 여름이 끝나는 날. 그 공식적이라는 말을 비웃듯 따가운 햇살이 내려 쪼이는 기록적 더위가 이어진 연휴였다.

여러날 찔끔찔끔 책장을 넘기던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역사> 정독를 마치며 연휴를 보냈다. <축의 시대>, <마음의 진보>에 이어 읽은 그녀의 세 번째 책인데 이번에도 진하게 남는 말 한마디 ‘compassion’이다. 역자는 이를 ‘동정심’이라고 했다만 카렌이 그 말에 담고 있는 의도는 사랑, 자비, 공감, 연민 등등의 말을 녹여내어 쓴 말 같다.

읽다가 혼자 실없이 낄낄거린 대목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제 머릿속 생각의 크기만한 신을 믿고 산다.”는 이젠 굳어진 내 고집을 더욱 공고히 한 것이었는데 바로 이 대목이다. -<아일랜드의 사도 성 패트릭의 유명한 기도문 구절. ‘신이 내 머리와 내 이해 안에 있게 하소서.”>


올해 팔순인 카렌 암스트롱과 비슷한 연배의 내 선생이자 신앙의 선배이며 내 삶 속에서 만난 숱한 인연들 가운데 묵직한 끈으로 이어진 이가 있다. 호주에 계신 홍길복목사님이다. 무엇보다 사십 년 함께 살아 온 아내와의 연을 맺게 된 탓(또는 덕?)의 빌미를 제공한 이가 그였으며, 비록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은 참으로 짧았지만 그로 인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신앙의 선생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가며 꾸는 꿈이 하나 있었다. 사오 십 년 전, 아내와 내 친구들이 십대 이십대 였던 나이에 삼십 대 청년이었던 홍목사의 설교를 들었던 시절을 다시 재현해 보는 꿈이었다. 그저 단지 꿈일 뿐이었다. 다들 그렇겠지만 나 또한 그 때의 신과는 사뭇 다른 신과 이야기하며 지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는 호주에 나는 미국 시골에 아내와 내 친구들 역시 고향 신촌을 다 떠나 있을 터. 그저 꾸어 보는 꿈이었다. 이른바 헛 꿈.

아직은 그런대로 정정하게 누워 계신다만 아흔 일곱 아버지 덕에 먼 길 나들이 나설 엄두가 나질 않았는데 이런저런 연유로 서울 나들이를 작심한 것은 몇 주 전일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 이틀 후 였을 게다. 홍목사의 서울 나들이에 맞추어 옛날 그 친구들이 고향 신촌 그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뿔사! 우리 내외 일정과는 맞지 않았다. 목사님과 우리 내외 일정이 겹치는 시간은 단 이틀 뿐이었다. 목사님께 아쉬움을 전하는 소식을 드리자 그가 전해 온 말이었다. “이틀 중 시간 조율해서 서울서 한번 만납시다.어쩜 이제 부터의 만남이란 늘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그리고 오늘 아침 아직 신촌을 지키고 있는 옛 친구가 전해 온 말. ‘교회와 여러 삶의 사정으로 인해 홍목사님을 모시고 드리는 예배는 일정이 바뀌었다.’는 소식. 그 바뀐 일정은 바로 목사님과 우리 내외 일정이 겹치는 이틀 중 하루.


해가 따갑고 뜨거워도 여름은 이미 아니다. 가을 볕이다. 그 볕에 이틀 간 널어 둔 호박이 정말 잘 말랐다.

  • 작고 마른 모습이야 타고 난 것, 그게 내 삶을 버텨 준 또 하나의 힘이었는 지도 모를 일이고. 그래도 머리카락은 까매서 그 또한 누리는 복이다 했는데… 엊저녁 느긋한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서니 며칠 사이(?) 반백이로세.
  • 제 아무리 백세 시대 운운해도 이젠 신의 은총을 곱씹어야 할 나이.  ‘compassion’과 함께. 무릇 “사랑, 자비, 공감, 연민, 동정심”이란 함(행위)이 뒤따라야 한다는 …

바른 늙음을 위하여. 은총에.

외식

어찌보면 나이 들어 늙어 간다는 게 별게 아니다. 그저 습관이 된 일상조차 버거워 지는 순간, 내뱉는 말이다. ‘에고 이젠 나도 늙었고만…”

아내가 저녁 밥 준비를 하느랴고 긴 기지개와 하품을 물고 부엌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넌지시 건낸 말, “나가서 먹읍시다.”

두 내외 한끼 먹을 밥상거리야 늘 차고 넘쳐 감사이다만, 때론 밥상 차리는 일조차 귀찮은 사치를 누려 보고픈 욕심으로 던져 본 말이었다.

그렇게 찾은 동네 식당.

밥 맛이야 어찌 집에서 해 먹는 맛을 따르랴만, 한 주간 밀린 피로를 씻은 참 좋은 외식이었다.

마침 노동절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이기도 하여 조금은 느긋한 여유가 생긴 탓이었는지 제법 시끄러운 실내 음악이 거슬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드럼과 전기 기타와 함께 이어진 생음악들, 음악에 문외한인 내 귀에도 익은 1970년대 Rock and roll이었다.

뒤뚱 거리는 걸음으로 밴드 앞에서 소년 소녀가 되어 춤을 추는, 비록 몸 크기야 내 두세 배는 족히 되겠지만 나이야 엇비슷할, 늙은 청춘들을 보며 나도 어깨 들썩이며 그들과 함께 청춘이 된 저녁이었다.

엉덩이 들썩이며 일어나려고 하는 아내를 달래고 돌아 오는 길, 혼자 속으로 되뇌어 보는 말 – ‘늙는 게 별 거일까? 그저 일상에서 어쩌다 만나게 되는… 마치 어느 날 문득 만나게 되는 거울 속 내 모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