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듯한 세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은 내겐 여전히 낯설다. 그만큼 세상 변화를 쫓아가는 내 모습은 더디고 때론 삶의 불편함을 묵묵히 견뎌 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물론 열심히 변화에 적응하려고 애쓰기는 한다만, 그 애씀이 지나치면 노년의 과욕이라는 생각으로 적당한 뒤처짐도 자연스런 일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사실 내 일상에서 스마트폰이 없다고 불편할 일은 거의 없다. 그렇게 시간 다투며 살아갈 일도 없거니와, 다행으로 가족이나 이웃들과의 연계의 끈을 수시로 확인해야 안도할 수 있는 궁박한 처지는 면하고 살 수 있는 감사함 때문이다.
문제는 집을 떠나 있을 때다. 특별히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 옛 기억으로는 적응할 수 없는 대도시 이거나 처음 찾은 곳에서 만나게 되는 낯선 환경이다. 이른바 키오스크(kiosk)라는 무인 단말기 앞에 서게 되거나 앱(App)을 통해 정보를 주고 받아야 하거나 돈 결제를 해야 할 일이 생길 때 일시 난감해 지는 노인이 될 때이다.
딸아이를 만나러 뉴욕에 갈 때면 아이는 나를 물정 모르는 시골 노인으로 알고 다 알아서 챙겨 준다. 속으로 혀는 차지만 이젠 그게 편해 나는 아무 말 않는다.
그리고 내 좋은 친구 한 사람.
한 두어 주 전이었다. “여름도 다 가는데 땀 흘려 걷고 신나게 먹고 그렇게 하루 함께 보냅시다!”라는 그의 권유로 어제 나섰던 길.
참 좋은 하루였다.
그간 살며 숱하게 지나고 오간 길목, 미처 가보지 못한 낯선 곳들에서 넉넉하고 여유로운 하루를 즐겼다. 그리고 친구의 손에서는 거의 온종일 스마트 폰이 떠나질 않았다. 그것이 우리들의 안내자였으므로.
좋은 친구 앞에서도 나는 먼저 노인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 뒤늦게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고생했다가 엊그제 음성 판정이 나온 딸아이가 짧은 메세지와 사진들을 보내왔다. 내 스마트 폰으로.
달포전에 사위와 딸이 내 집에 왔을 때 함께 했던 사진들과 어제 함께 했던 내 길동무들의 안녕을 비는 마음과 함께. 스마트 폰으로.
그렇다. 이젠 변화에 두려워 할 나이도, 더딘 적응에 부끄러워야 할 나이도 아니다.
그저 내 삶의 속도에 맞추어 가까이 두고 즐길 수 있으면 좋은 스마트 폰이라는 장난감 하나에 대하여.
*스마트폰 없어도 서로 통할 수 있는 참 좋은 친구들과 보낸 하루에 대한 감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