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엔 그리 많이 듣지 못하겠다만 내 스물 나이 시절이었던 1970년대엔 한(恨)에 대한 이야기들이 차고 넘쳤었다.
한을 품고 사는 사람들, 맺힌 한을 부둥켜 안고 죽음의 강을 건넌 사람들, 피를 토하며 쌓인 한들을 외치며 하소연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이른바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되어 떠돌던 시절이었다.
흘러간 시간들을 돌이켜 따져보니 오늘날 가짜 뉴스들이라고 일컫는 당시의 유언비어들은 거의가 진실이었으며, 그 시절 맺힌 한들을 푸는 일은 여러 갈래 방법으로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당시 한에 대한 이야기들은 소설, 시 등의 문학적 방법 뿐만 아니라 사회학의 구조로 또는 철학으로 나아가 신학적 방법으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들로 이어졌었다.
그런 이야기를 풀어 냈던 한 사람 가운데 서남동 목사님이 계셨다. 그는 살아 생전 한 맺힌 사람들의 응어리를 풀어 주는 일에 온 힘을 쏟았던 사람이다. 학문적으로도 그렇고 삶 속 행동으로 그를 온전히 실천하며 떠난 사람이었다.
오늘 밤, 한국 뉴스 한 꼭지를 보다가 <한의 신학>을 설파하셨던 서남동 목사님을 기린다. 그의 목소리와 그의 주창과 그의 신학적 고뇌와 그의 외침이 2023년 오늘,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 땅에 절절하게 유효하기 때문이다.
<한(恨)이란 눌린 자 약한 자가 불의를 당하고 그 권리가 짓밟혀서 참으로 억울하다고 생각할 때, 그 호소를 들어주는 자도, 풀어 주겠다는 자도 없는 경우에 생기는 감정상태이다. 그러기에 한은 하늘에 호소하는 억울함의 소리, 무명(無名)의 무고(無告)의 민중의 소리 바로 그것이다.>
사람 조국(曺國)을 바라보는 시각들은 실로 다양할게다. 나는 그에게서 한 맺혀 오늘을 사는 반도 남쪽 민중들의 모습을 본다.
그를 다루는 숱한 이야기들 속에서 비겁, 야비, 질투, 시기, 모함, 집단 린치 등등 오늘날 반도 남쪽의 어둡고 음습한 가진 자들의 모습과 할 수 있는 한 그 가진 자들과 함께 해보려는 그저 그런 이들의 모습들을 보곤 한다.
서남동 목사님은 지식인(지식인을 자처 하는 한)은 민중이 결코 될 수 없다는 주창을 종종 하셨다.
나는 사람 조국이 뱉아 낸 단말마(斷末魔)를 통해 그에게서 오늘을 살아가는 민중을 만난다.
그와 그의 가족들의 한풀이가 이루어지는 날을 위하여! 함께 나아가는 이들과 작은 몸짓일지라도 이어갈진저.
*** 어쩌다 이리 무지, 무식에 야비함과 비겁함을 더한 사기, 도둑, 강도떼들의 전성시대가 되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는 구석 하나. 이 땅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한을 풀고 이웃의 한을 풀고자 애쓰며 함께 하는 한의(한풀이) 사제들이 늘 함께 한다는 사실 더하여 진실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조국 “차라리 옛날처럼 나를 끌고 가서 고문하라” < 사회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