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몸짓

참 이상한 일이다. 아주 오래된 옛 기억들의 시점은 거의 정확히 꿰곤 하는데 최근 십 수년 이래 일들은 바로 엊그제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 옛 일 같기도 하도 때론 기억조차 희미하기 까지 하다. 쯔쯔, 진짜 늘그막인가 보다.

내 늘그막을 확인시켜주는 이즈음의 또 다른 증상 하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혀 차는 때가 자꾸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입추 (立秋) 지나 처서(處暑)가 코 앞인지라 해는 여전히 따갑다만, 이는 마른 바람에 뭉게구름조차 나른하게 낮잠 졸게 딱 맞춤인 날씨다. 하늘보고 날짜 가는 것과 날씨를 가늠했던 옛 노인들의 지혜라니!

장광선 선생님이 떠나신지 벌써 네 해 째를 맞는다 하여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리려고 여남은 벗들이 함께 했다.

살며 만나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조촐히 그를 기린 후 돌아 오는 길에 떠오른 장선생님과의 옛 추억 하나.

생전의 그와 나는 논쟁을 몇 차례 했었다.  그 중 하나가 희망에 대한 논쟁이었다. 그는 희망은 약자들의 무기일 뿐 그것은 허망한 것이라고 하였고, 나는 그 무기로 하여 약자들이 승리할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이라고 했었다.

오늘 돌아오는 길, 생전 그가 무시로 넘나들었던 델라웨어 메모리얼 다리를 건너며 깨달은 사실, ‘그가 옳았다’.

그랬다.

자주 민주 민중 평화 통일을 이룬 세상 나아가 사람들이 서로 참 사람 되어 모두가 평등한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꿈은 따지고 보면 그의 희망이나 이상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것들은 그가 이 땅에서 살아 숨 쉬었던 순간 순간 그저 그가 살아갔던 삶의 방식이었다.

우리들의 꿈과 이상과 희망적인 세상과 점점 멀어져가기 만 하는 듯한 이즈음 세상 소식들은 따지고 보면 오늘 우리들이 살아 갈 까닭들을 깨우치고자 할 뿐이다.

장광선선생, 그가 아직 우리 가운데 살아있음이다.

늦저녁,  요 며칠 사이 내 뜰에서 동무가 된 나비 몸짓을 즐기다 떠오른 말, ‘나비 몸짓으로 태풍이 인다’고…

오늘도 함께 나비 몸짓하는 하는 벗들에게 감사를.

장광선선생을 기리며.

8. 1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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