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어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에 시동을 걸 무렵, 멀쩡하던 하늘이 까맣게 변하더니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후두둑 차창을 두드리던 빗방울이 순식간에 폭우로 변하더니 하늘 꼭대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로 변했다. 거센 바람과 번개와 천둥은 운전대를 잡은 내 손과 가히 한 치 앞이 가물가물한 차창 밖을 바라보는 내 두 눈에 온 힘을 모으게 했다.

평소 20분 정도 걸리면 족한 거리를 두 배 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비와 바람과 번개와 천둥이 이어졌다. 동네 어귀에 다다르자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고 있었다. 간신히 돌아서 집에 도착하니 내 집은 물론 이웃 집 모두 불빛이 없다.

번쩍하는 번개 빛과 천둥소리 거센 빗소리가 이어졌지만 전기가 나간 집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로 아내와 나는 저녁 식사도 잊은 채 그 어둡고 고요함을 한동안 즐겼다.

전기가 다시 돌아올 기미는 없고 빗줄기가 잠시 잦아 들어, 저녁을 때울 요량으로 뒷뜰에 나가 그릴에 라면을 끓이던 중  구름 사이 지던 해가 반짝이더니만 무지개가 떳다.

허나 전기는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간만에 촛불 속에서 아내와 내가 나눈 뚱딴지 연가(戀歌).

“혹시 한국 나가면 뭐 먹고 싶어?”라고 묻는 아내. 그리고 이어진 내 대답. “글쎄…. 선지 해장국…. 연탄불에 구운 얇게 저민 돼지 갈비….” 그래, 나는 이젠 가 보았자 만날 수 없는 내 고향 신촌을 그리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까지 전기는 돌아 오지 않았고, 가게로 나가는 길목 곳곳에 엊저녁 빗줄기와 바람과 번개와 천둥과의 싸움에서 산화한 나무들이 길을 막고 누워 있는 까닭에 돌고 돌아 일터에 이르렀다.

만 하루 만에 전기가 돌아왔고, 신문은 하루 사이 변한 이웃들의 소식을 사진으로 전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간밤 사이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난 그걸 미처 모른 체 하며 여기까지 왔고…. 쯔쯔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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