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제법 두꺼운 장편소설이었는데, 어제 오후에 첫 장을 넘긴 후 오늘 아침 책장을 덮기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 내린 <작은 땅의 야수들, 영문 원제는 Beasts of a Little Land>이다.
소설의 저자 김주혜(Juhea Kim)는 내 아들 녀석보다 어린 이민 1.5세란다.
책 말미에 남긴 작가의 말이다. <… 아무런 인정이나 대가를 받지도, 기대하지도 않고 오직 조국의 독립에 일조한 나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와 같은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이 책의 시초다.>
소설은 1917년 부터 1964년에 이르는 세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박정희 집권 초기에 이르기 까지 혹독한 시절을 야수처럼 살아낸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을 평양, 경성, 상해, 제주 등을 배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겪어 낸 세월이었고, 1964년이면 내가 신문을 읽을 만큼 머리가 굵어졌던 때이기도 하니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히 백 년 넘는 세월을 소설과 함께 하루 밤에 겪어낸 기분이었다.
주인공 옥희의 독백을 통해 만나게 되는 젊은 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각은 늙막에 내가 겨우 붙든 것이어서 부끄러웠다.
<어쩌면 사람은, 그가 살아 있다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에야 비로소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 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배경은 바로 호랑이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다.
<우리가 호랑이를 볼 수 있는 건 호랑이가 기꺼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할 때 뿐이고, 그 이전에는 어림도 없는 소리죠.>
<상처입은 호랑이는 건강한 호랑이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요. 호랑이들은 영물이라 복수심을 품을 줄 압니다. 불의와 정의를 기억할 만큼 영리하고, 공격을 받아 다치면 상대를 죽일 기세로 덤빈답니다>
작가가 단 한번도 드러내지 않은 말이다만. 이야기를 읽는 내내 ‘민중’이라는 말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거니와 바로 호랑이야 말로 민중의 모습이 아닐런지.
비록 한반도에서 더는 볼 수 없다는 호랑이이지만, 정의와 불의를 가늠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온순하지만, 불의를 향해서는 누구도 막지 못할 용맹을 자랑하는 민중의 모습으로 온 세계에 퍼져 사는 사람들에게서 작가는 호랑이를 만난 것은 아닐까?
젊은 작가 김주혜를 통해 나는 역사의 진보를 또 다시 굳게 믿는다.
<나는 마침내 바다와 하나였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주인공 옥희의 말이다.
- 제주 앞 바다 – 한반도의 열린 미래의 문이 되어야 마땅할 물을 2023년 오늘 더럽히고 있는 놈들에게 한 소리 지르고자 오후에 필라델피아 아트 뮤지엄(Philadelphia Museum of Art) 계단에 서서 외치다. “Stop! Fukushima nuclear wastewater”
- 그 계단에 서서 또 외치다. “윤석열 탄핵! 김건희 구속!” – ‘참 가지 가지 한다.’는 욕도 아까운 백년 묵은 적폐들을 향하여!
- 필라 하늘을 가로질러, 태평양과 대서양을 거쳐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뜻을 같이 하는 모든 민중들이 포효하는 호랑이 큰 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