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을 내려놓는 은퇴는 아직 계획에 없다만 사회적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쪽으로만 본다면 일찌감치 은퇴한 셈이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이야기 좋아하고, 이런저런 세상일에 나서기 좋아했던 시절을 마감한 때는 기억이 가물 할 정도로 오래 되었다. 그런 쪽으로 보자면 조기 은퇴한 편이고, 어쩌다 사람들이 제법 모인 곳에 갈라 치면 입 꾹 다물고 있자고 다짐을 놓곤 한다.
이즈음 들어 딱히 한인들을 여럿 만나는 경우라야 필라델피아에 올라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이나 윤석열 무리들을 몰아내자는 마음으로 모이는 ‘필라 민주 동포 모임’ 뿐이다. 이 모임에서도 그저 머리 수 채우고 박수 칠 뿐이지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없다.
아내는 아직 사회적 인간관계가 나보다는 넓은 편이다. 교회 생활도 꾸준하고 한국학교 선생도 열심이고 아직은 활발히 지내는 편이다.
나는 이런 생활이 두루 편하고 좋다. 아니 편하고 좋다기 보다는 내 나이, 내 수준, 내 형편에 여러모로 내게 걸맞은 생활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비록 시늉 짓일지라도 이런 생활에 감사를 곱씹으려 노력하는 쪽이다.
내 값싼 감사의 댓가로 누리는 신의 은총은 늘 지나치게 크다. 짧은 여행길을 돌아보니 그 은총의 크기는 가히 가늠 못할 만큼 크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 여행길을 걷고, 더불어 먹고 마시며, 어제 오늘 내일의 이야기들을 서로 고개 끄덕이며 듣고 나눌 수 있는 길동무가 있다는 사실 – 이 나이에 누릴 수 있는 그 보다 큰 은총이 또 있으랴!
그저 감사 또 감사.
-2023 퀘벡 여행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