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그리고 말씀에

필라델피아 아트 박물관을 찾은 건 거의 스무 해 만이다.  ‘언제 왔었더라….?’ 그 기억을 되찾는데 한참 걸렸다. 그 때는 박물관 구경이었고, 오늘은 박물관 앞 계단에서 <윤석열 탄핵 촉구>를 외치기 위함이었다.

늘 그렇듯 이민사회에서 이런 모임 머리 수는 늘 소수다. 우리 내외가 아직도 그런 소수들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어 참 좋다.

간만에 만난 후배가 모처럼 제 자리 찾아가는 듯 했던 <민주평통자문회의>가 다시 보수화 되어가는 상황을 말하며 안타까워 했다.

그 기관에 대한 관심이 애초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후배들이나 다음 세대들이 보이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과 행동에 대해 늘 박수를 아끼지 않는 내게 그의 안타까움이 크게 다가왔다.

그러다 떠올려 본 돌아가신 홍근수 목사님 그리고 그의 말씀 하나.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려고 왔다.(마태 10: 34)” 다른 곳에서는 칼이라는 말 대신에 ‘불’ 또는 ‘분열’을 일으키려 왔다고(누가 13: 49-51)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칼이나 불이나 분열은 모두 같은 뜻으로 폭력적 분쟁이나 갈등, 또는 전쟁을 의미하는 말들입니다. 예수의 이 선언은 확실히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거리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의 말입니다.

예수가 도대체 무슨 의도에서,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했는가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정의에 근거하지 않는 평화란 정글의 상태일 뿐으로 그러한 상태는 평화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태여 평화라면 가짜 평화일 뿐입니다. 그런 가짜 평화가 지배하는 곳에 예수의 진정한 평화의 복음이 선포될 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분열과 싸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의가 없는 곳에 평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유가 없는 곳에 평화가 없습니다. ………중략…….

법, 질서, 안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불평불만과 저항을 강압적 수단으로 억압하여 사회를 조용하게 만드는 것, 그것을 평화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실상 그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의 해방과 정의 복음은 곧 이러한 가짜 평화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해방과 정의의 복음, 사랑과 평화의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는 곳마다 칼, 분열, 싸움이 일어났고 혁명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홍근수 목사- 예수의 복음 위에 굳게 두 발 딛고 서서 통일과 평화 운동 맨 앞 열에 서 계셨던 분. 아마 살아 계셨다면 윤석열 일당을 향해 예수의 검을 내리치셨을 터.

서울 법대 출신인 그를 생각하니 그 학교가 매양 무식, 무지, 무능 위에 비겁, 야비, 파렴치를 겸비한 윤석열 양아치 패거리들만 배출한 것은 아닌 듯.

언제나 굳건히 변함없는 후배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