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작

살며 ‘사’짜로 끝나는 직업군들은 만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물론 직업적으로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내 바람일 뿐, 사람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테면 판, 검사, 변호사, 의사, 박사, 목사 따위들을 말하는데, 다시 되뇌이지만, 그 직업으로 다가오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그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판, 검사나 변호사를 일로써 내가 만나게 되는 경우란 없어야만 백 번 좋은 일이다.  물론 소시민적 삶을 사는 내게 해당하는 말이겠다만. 의사도 마찬가지다. 아프지 않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 박사 역시 다를 바 없다. 내가 학문하는 사람이 아닌데 무슨 전문 분야의 박사를 만나 시간을 보낼 특별한 까닭도 없다. 목사 역시 마찬가지다. 머리 굵어 제 생각 가질 나이를 먹은 후 신과 내 사이의 연결 고리로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버린 지 오래 되었다.

살다보니 내 가까운 가족들 가운데도 그 ‘사’짜 직업군들이 여럿 있게 되었다만 그들 업의 특성 때문에 그들과 이야기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은 여전하다.

그 바램은 여전하건만, 제 바램 대로 사는 삶이 어디 있겠나?

한 동안 꽤나 피곤 했다. 난 그게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봄철 이후, 생업의 강도가 생각보다 조금 심했기도 했고, 인력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이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여 그 피로는 아주 당연한 일로 생각했었다.

그러다 달 포 전,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간 가정의(醫)로 부터 들은 말이었다. “심장에 좀 문제가 있어요. 정밀진단을 받아야겠어요.”

며칠 전 정밀진단 결과를 알려 주는 가정의의 말이었다. “심장판막에 문제가 생겼어요. 이젠 심장 전문의를 만나셔야겠어요.”

그렇게 심장 전문의와 약속을 잡아 놓고 이틀 여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오늘, 여느 일요일과 다름 없이 잔디를 깍고 물을 주고, 한 주 만에 꽃이 핀 열무를 ‘아뿔사’하며 거두어 김치도 담으며 환한 웃음을 짓다.

“에고, 이 눔아! 나이 따라 가는 게야~ 싫어도 의사 자주 만날 나이가 된게지!” 그 한마디 머리 속에 떠올리며.

곰곰 따져보니, 그저 감사한 일이다. 이 나이 먹도록 상용하는 약 하나 없거니와 그 흔한 바이타민 제대로  먹어 본 일도 없었으니 이젠 의사와 친해져도 불평할 일은 전혀 없어야 마땅할 일.

늦은 밤, 읊조려 보는 말, “그래 이젠 진짜 노년이다. 새로운 시작이다.”

나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