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에

*단지 나이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과한 한 주간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아이고! 이젠 진짜 일을 접을 나이???…’라는 생각이 온통 머리 속에 꽉 찬 오늘 저녁, 문득 내 눈에 박힌 창밖 저녁 하늘이 보내던 위로 한마디다.

“에고, 이 사람아! 뭘 또 그리 엄살을… 나를 보게나! 지난 한 주 동안 나의 이런 얼굴 볼 수 없었을 걸. 나도 계속 울상이었지. 비 내리고 구름 끼고. 생각해 보게! 맑은 날 그리 많지 않어! 나를 보고 어께 펴고 큰 숨 한 번 쉬라고!”

** 어제 늦은 밤에 넘겼던 책 갈피 속 이야기 하나.

‘가난이나 굴욕 속에서 삶을 마치는 것 밖에는 다른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는 민중이 있다. 그 삶의 시작 부터가 운명의 예고를 표시한다.’ –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의 생각을 해설하는 조국 선생의 책 <조국의 법고전 산책> 속 이야기다.

물론 나는 그런 민중과는 거리가 먼 축복된 삶을 누려온 편이다.

다만 민중의 관심에 대한 흉내라도 끊이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오늘 밤 토마스 페인의 상식(Common Sens)을 읽다.

그 상식의 첫 머리에 나오는 이야기.

<모든 국가안에 사회적 단계는 축복입니다만 정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정부란 그것이 비록 최상의 정부라 할지라도 필요악일 뿐입니다. 정부가 최악일 경우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정부입니다. Society in every state is a blessing, but government, even in its best state, is but a necessary evil; in its worst state an intolerable one.>

이즈음 이어지는 참담한 뉴스들에 대한 위로.

*** 사위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게 그리 먼 일도 아닌데 어느새 내가 장인으로 불리는 처지가 되었다.

내 사위의 독특한 점 하나, 나이에 걸맞지 않게 필름 카메라 애호가이다.

그가 사진 찍기는 좋아 하지만 찍히기는 몹시 싫어하는 내 모습을 담아 보냈다.

그게 참 좋았다. 크게 고마왔다.

쉽게 잊고 살았던 내 위로의 시간들을 담아 낸 사진이었으므로.

위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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