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노래꾼 장사익이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뜰 일을 하다가 생각났던 내 할아버지 그리고 찔레꽃.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를 만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처음 그의 소리를 듣던 날부터 이제까지 나는 심심찮게 그를 즐기곤 한다.

내 할아버지는 평생 양복이라곤 입어 본 적 없으신 한량이셨다. 겨울철 솜 두둑히 넣은 한복과 두루마기, 여름철 베와 모시 적삼 할아버지의 옷들, 그 수발은 오로지 내 어머니의 몫이었다.

반주(飯酒)로 30도 소주 한 병과 고봉밥을 드셨던 내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상극(相剋)이셨다. 아버지는 그 사이에서 늘 어정쩡 하셨다.

내가 머리 굵어진 후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버지는 질색을 하셨고, 어머니는 할아버지 꼭 빼 닮은 놈이라고 하셨었다. 할아버지는 ‘넌 누구 닮아 그리 몸이 약하냐?’며 당신과 다른 나를 보며 혀를 차곤 하셨다.

그 할아버지 마지막 여정을 온전히 함께 하셨던 어머니와 아버지, 거의 오십 년 전 일이니 그 때 무슨 노인 시설이나 병원 신세를 꿈이라도 꿀 수 있었겠나? 생각수록 난 어머니 아버지의 흉내 조차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

그리고 내 할아버지. 한 잔 술에 얼큰 하셔서 두루마기 자락 툭툭 어깨 춤 가볍게 덩실 거리시며 한자락 소리 뽑아 내시던 이, 나는 장사익의 소리를 들으면 늘 내 할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 뜰 일을 하며 장사익이 부르는 찔레꽃을 따라 흥얼거렸다.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내 뜰은 이제 노란색에서 붉은 색으로 옷을 갈아 입는 중이다.

장사익은 찔레꽃을 노래하며 울음을 사랑으로 바꾸어 놓는다.

내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더욱 사랑으로 다가오는 밤이다.

오늘은 4월 16일, 아픔을 사랑의 투쟁으로 바꾸며 오늘을 사는 이들을 생각해 보는 밤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자연을 노래하는 철인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혁명적 명성을 일깨워 주는 조국의 <법고전 산책> 몇 장을 넘기며.

찔레꽃에.

4.16.23

*** 처음으로 개나리 꺾꽂이를 하며 깨달은 사실 하나, 개나리 가지속은 대나무처럼 비어 있다는… 도대체 난 뭘 알고 살아 온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