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실천)에

브라질 교육학자 파울루 프레이리(Paulo Freire)라는 이름과  그의 책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 피억압자의 교육학) 그리고 그가 강조했던 말 ‘프락시스(praxis)’는 내가 젊었던 시절 선생님들께 많이 듣고 고민했던 추억이 되었다.

생각과 일 곧 뜻과 함이 일치되는 삶의 행태를 일컬어 ‘프락시스(praxis)’라는 프레이리의 사상은 70년대 젊음을 보낸 내 또래들에게 우상이었다.

그리고 어제 늦은 밤, 철학자 강신주 선생의 책 ‘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책장을 넘기다 만나게 된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으로 예나 지금이나 함(행동) 없는 뜻(도덕 또는 윤리 아님 정치 사회적 구호 등)이 얼마나 헛된 것임을 되씹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측은지심’이 생겨도 가서 구해주지 않는다면 그 마음의 근원만을 캐들어가서 ‘인(仁)이라 말할 수 없다.” – 사람의 본성이 제 아무리 착하고 어질고 정의롭고 등등 선한 말들로 치장한다 하여도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행위가 따르지 않는다면 뜻이 없다는 정약용선생의 가르침이란다.

내가 아직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이들의 행렬 제일 꽁무니에 서서 함께 뒤쫓아가는 일이나, 떠나온 땅이지만 언제나 고향인 모국이 진정 사람사는 세상으로 진보해 나아가는 일에 깃발든 이들을 뒤쫓는 까닭이랄까.

비록 부끄러울지라도 흉내라도 내며 살 수 있음에 그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