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 바램

온 종일 안개가 내 눈이 닿는 세상을 덮고 있다. 이른 아침 눈을 뜰 때부터 밤이 깊어 가는 무렵까지 거두어 지지 않는 안개 속 세밑 하루를 보낸 것은 내 생애 처음이다. 하여 삶은 늘 경이롭다.

이렇게 안개 속에 2022년 한 해를 보낸다. 돌이켜 아쉬움 없이 접은 달력은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나는 감사함으로 그 아쉬움을 덮는다. 신이 내게 허락한 믿음 덕이다.

나 자신만의 일로 뒤돌아 보자면 그저 감사만이 차고 넘친 한 해였다. 코로나로 며칠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만, 나나 아내나 큰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보낸 시간에 대한 감사가 크다. 이젠 많이 쇠하시긴 하였으나 아직은 비교적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계시는 아버지가 만 아흔 일곱을 세고 계시다는 감사도 크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 모두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는 즐거움에 대한 감사는 어디에 비하리. 그 나이에 어미 아비에게 말 못할 아쉬움과 아픔들이 어찌 없겠느냐만, 늘 밝은 내 아이들에게 그저 감사 뿐.

무엇보다 우리 내외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일터와 그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즐거움을 이어온 한해에 대한 큰 감사는 곱씹어 마땅하다.

다만 아쉬움을 넘어 분노로 이어지던 한국뉴스들이 넘쳐난 한해에 대한 기억을 그대로 품고 새해를 맞는 답답함이 있다만…. 한국뉴스는 여기 아주 작고 좁은 한인사회 이웃관계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곤 하기에 결코 먼 뉴스들이 아니므로.

아무튼 신이 허락해 주신 2023년 새해를 맞는다. 하여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노년의 길로 들어선다. 길은 여전히 안개 속일 수도 있을게다.

바라기는 새해에도 아쉬움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를 덮을 수 있는 감사를 찾을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시길. 새해, 전해오는 한국뉴스들을 지금 여기 내 이웃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길.

삶은 늘 경이로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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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연휴

성탄 연휴, 아이들이 찾아와 사흘을 아무 생각없이 쉬었다. 갑자기 다가온 매서운 추위 때문이기도 하였고 사위와 딸이 애지중지하는 애완견과 함께 갈 수 있는 마땅한 곳도 없어 집에서 그저 편히 쉬었다.

늦은 나이에 음식 만드는 일을 즐거워 하게 된 내가 그저 대견 스럽고 감사한 연휴였다. 먹성 좋은 아들과 조금은 섬세하게 준비해야하는 며느리와 내가 결코 큰 소리치지 못하는 딸아이와 사위 입성까지 생각하며 마련한 밥상을 차려 놓고 흐믓해 하는 내 즐거움이라니!

가족들이 모이면 늘 부엌에서 하루를 보내셨던 어머니께 내가 역정을 내며 물었었다. “아니 뭘 힘들게 혼자 다 할려고 해요? 나누어 하든가 조금씩만 하든가!” 그럴 때면 하셨던 어머니의 대답, “이 눔아! 내 몸 놀려서 많은 식구들이 잘 먹는 거…. 그게 얼마나 좋은 지 넌 아직 몰라서 그래.”

그 어머니 흉내 낸 사흘이었다.

돌아보면 모두 흉내 짓으로 이어온 내 삶이지만 흉내의 대상이 결코 부끄럽지만은 않다.

그래  감사다.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아내 몫이었다.

그게 또 감사다.

또 한 해를 내려놓는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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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아닌 물음에

연말연시라 고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저 하루하루의 연속일 뿐이다. 허나 단지 그렇게 치부하기엔 삶은 때론 지나치리 만큼 역동적이기도 하고 지루하게 늘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하여 순간순간 단락 지어 되뇌이며 사는 지혜를 터득한 사람들이 만든 결과물 또는 그 지혜를 허락한 신의 은총으로 낳은 게  월력이 아닐런지?

아무튼 이런저런 연말 어수선한 일들이 많은 어제, 한 주간의 일을 마치고 ‘필라델피아 민주시민모임’이 주최한 <10.26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윤석열 퇴진 촉구를 위한  모임>에 다녀 왔다.

생각이 엇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는 비록 처음 본 얼굴 일지라도 그저 즐겁다

오랜 벗들도 있고, 어제 처음 얼굴 마주 한 이들도 많았다. 어제 함께 자리하게 된 까닭들도 여러가지였다.

나는 그저 반갑고 만난 얼굴들이 고마웠다.

세상사 믿음이라는 엉뚱한 잣대로 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사는 삶, 내가 사는 시간, 나와 더불어 사는 우리를 묻는 물음으로 사는 얼굴들이 참 고마왔다.

엊저녁 멀리서 전해 드리는 위로가 참사 유가족들에게 전해지기를…. 하루가 다르게 뒷걸음질 하며 퇴행하는 내 모국(母國)을 위해 추운 날 거리에 나선 이들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원컨데 넋 잃은 믿음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 바로 사람에 대한 물음으로.

다짐

뉴스가 비현실적으로 다가 올 때가 많다. 허긴 그래야 뉴스가 되기도 하지만. 이즈음 한국 뉴스는 더더욱 그러하다.

비현실적이라고 했지만 대개는 내 무지한 탓이지 조금만 주의 깊게 보았다면 예견할 수도 있는 소식들도 많다. 그런데 정말 꿈에서 조차 만나기 싫은 소식들을 듣거나 볼 땐 ‘아하! 다시는 한국뉴스 보지 말아야지!’하는 다짐을 놓곤 한다. 물론 그 때마다 며칠 이어지지 못하는 다짐이지만.

꼽아보니 노무현대통령 서거, 세월호 참사, 조국 교수의 무너짐 그리고 최근의10.29이태원 참사 등은 마치 꿈을 꾸듯 다가 온 비현실적 뉴스들이었다.

비록 내가 다시는 돌아가 살지 못할 곳이지만 꿈 속에서 마주해도 아파할 소식을 듣노라면 내 삶의 연은 아직은 그 땅에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더하여 내가 그 땅에서 살았던 시절의 구호들, 이젠 박물관의 유물로 박제되어도 마땅할 일천 구백 칠 팔 십년 대   그 낡은 구호들, 일테면 반(反)민주, 반 민중, 반 노동, 반 통일, 반 평화 정권 타도의 구호들이 다시 절실해 진 뉴스들을 보며….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이 모이는 곳에 머리 수 하나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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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온 종일 쏟아져 내리는 비 탓에 가게가 한산한 날이었다. 겨울철 이런 날이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아이고 그저 감사하거라! 이 비가 눈이 되어 이렇게 내렸어 봐라, 여러 날 장사 망치지 않았겠니?’

그 말씀 생각나 비 탓 아닌 비 덕으로 한 해를 돌아보는 여유를 누렸다.

이즈음 내가 자주 듣는 질문이다. ‘언제 은퇴하시나?, ‘언제까지 일 하시려나?’.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이다. ‘계획 없고요.’ 또는 ‘글쎄… 그저 일할 수 있을 때 까지…’

한 해가 다 가고 이젠 일반적인 통념으로도 꽉 찬 은퇴 나이를 맞이하는 때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왜 없겠느냐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직은…’

가게 한 켠엔 딸아이가 엄마 생일에 보내 준 꽃들이 아직 화사하고, 그 꽃을 보며 이야기 꽃 피우는 손님들이 있고, 내리는 겨울 비 바라보며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일터에 아직은 그저 감사 뿐.

온종일 겨울비 내리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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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리고 사랑에

  1. 멀리 캘리포니아 사돈께서 잘 키워 거두신 대추 한 상자를 보내주셨다. 호두알 만큼 큼직한 대추가 마치 설탕처럼 달았다.  누이들에게 크게 한 움큼씩 나누어 주고, 대추를 이용한 음식에 대해 알아본다.

성탄절에 찾아 오겠다는 아들, 사위, 딸, 며느리들을 생각하며 대추       넉넉히 들어간 갈비찜과 약식을 해 보아야겠다. 우리 내외를 위해         대추고를 좀 만들어 놓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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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내 생일을 맞아 아내의 사촌동생이 자신이 부른 노래를 보내왔다.  내가 그를 본지도 족히 사십년은 되었을 터. 그가 부른 ‘겨울아이’와 ‘Holiday’다.  ‘Holiday’는 아내가 어렸을 적 흥얼거렸던 게 기억나 불러 보았단다. 그도 이젠 환갑나이란다.

 

3. 어제 필라델피아 아주 낮은 곳에서 목회 하시는 이태후목사님께서 준비하신 지역사회 성탄잔치에 내가 참 좋아라 하는 필라세사모 친구들이 선물상자를 마련해 함께 했단다.

내  아들  며느리가  짝을  맺은 지가 어느새 육 년 전 일이 되었다. 당시 나는 아이들 결혼에 극심하게 반대 했었다. 그런 내게 아이들이 제안을 해 왔다. ‘우리 목사님을 한 번만 만나 주시라.’고. 나는 단칼에 아이들의 제안을 거절 했었다. “이 눔들아! 이건 목사가 해결해 줄 문제가 아니야! 이건 내가 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야!”라고.

그렇게 시간은 내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 주었고, 이젠 까만 얼굴의 며느리가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지 말해야만 할 지경이다. 그 때 아이들이 나를 만나게 하려고 했던 목사가 바로 이태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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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추상자와 함께 보내 온 캘리포니아 사돈의 카드인사.  “우리 서로 멀리 있어도,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사람 그리고 사랑에.

  • 올겨울엔 불을 많이지 펴야겠다.  두루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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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이야기>

  • 아침

우리 내외가 노인식당이라고 부르는 Perkins 앞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린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시간에 노인들이 많아 하는 소리이지, 노인 전용식당은 결코 아니다. 아무튼 우리 내외도 자주 들리는 곳이다.

내리는 빗물에 식당안의 불빛이 춤을 춘다. 저 불빛 아래 앉아 있는 이들이나 우리 내외가 살아오며  빗물에 흘려 보낸 이야기들은 얼마나 될까?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온종일 내릴 모양이다.

  • 점심

세상 뉴스들이 온통 우울하게 다가오는 것은 내리는 비 탓이 아니다. 그러다 듣게 된 절규에 가까운 어느 변론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무렴, 세상이 온통 우울한 것은 아니다.

어느 변론

  • 저녁

오후에 비가 그쳐 막내 동생 얼굴이 활짝 폈다. 막내 동생의 막내 아들이 장가가는 날이다. 내 어머니 아버지 소원 이룬 날이다. 손주들 모두 짝 찾아 사는 날을 소원했었다.

큰 잔치였다.

그렇게 마주하는 이야기들은 이어진다.

하루는 늘 길거나 짧다. 모든 이야기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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