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連休)에

“다음 연휴는 언제 일까?”하며 아내가 달력을 넘겼다. 연휴를 마치고 일을 다시 시작한 어제 가게에서 였다. 연휴를 맞아 즐기는 맛보다는 다시 그 시간들을 기다리며 꿈꾸는 멋진 상상들이 어쩌면 더욱 삶에 기운을 북돋는 흥일 수도 있을 터.

노동절 연휴에 애초 내가 세웠던 계획은 울타리 나무들을 심는 것이었는데 이런 저런 까닭으로 미루게 되었다. 하여 온전한 쉼을 즐기는 쪽을 택해 시간을 보냈다.

엊그제 일요일이었다. 교회에 간 아내가 전화를 했다. “신권사님 내외가 오셨네! 예배 마치고 점심 식사하러 가는데 함께 안하시려나? 오랜만이잖아?”.

‘신권사’ – 그의 이름을 듣자 그가 서부시대 마차에 보따리 짐 바리바리 싣고 황금을 캐러 서부로 향했던 옛사람처럼, 밴트럭에 가득 짐을 싣고 동네를 떠나던 날이 생각났다. 얼추 스무 해 전 일이었다.

신권사 내외는 남도(南道)의 흥으로 사는 이들이었다. 그의 집 문턱은 매우 낮아서 누구나 무시로 드나들 만큼 넉넉하였다. 십 수년 한 동네에서 살며 또래들이 신앙으로도 차마 채울 수 없는 이민 생활의 헛헛함을 채우는 우물 같은 역할을 하곤 했었다.

그 무렵 그의 집에 자주 모였던 이들 중 이 동네에 남아 있는 이들은… 글쎄… 떠오르질 않는다.

나는 아내의 권유를 물리쳤고, 그 날 저녁 신권사 내외와 이젠 교회와 동네 터주가 된 오랜만에 만난 이장로 내외와 옛 이야기 나누며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었다.

이곳을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십년, 시카고에서의 십년 – 그가 지낸 시간들의 이야기를 듣고, 같은 마차를 타고 이 동네에서 달려 온 이장로와 내 이야기를 섞어 나누고 들으며 모처럼 맞은 연휴의 뜻을 새기는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 내가 말 많이 한 밤이었다.

제 마음대로 할 일 다 해도 하늘의 뜻에 거스를 일 없는 나이라 하여 공자왈 일흔 나이를 종심(從心)이라 하였다던가?

살며, 쌓인 한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이며, 한 점 부끄럼 없는 인생이 또 어디 있을까? 또한 감사함 하나 꼽을 수 없는 삶은 없을 터.

하여 그저 감사함으로. 스무 해 만에 만나 얼싸 안으며 반가운 사람 하나 있어 감사! 하늘의 뜻 거스를 일 없는 나이에 품은 흥 넘치는 남도(南道) 사내 내외의 꿈을 위하여 빌 수 있는 믿음 하나 있어 감사!

연휴의 마지막 날, 아내와 함께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꽃길 걸으면서 미처 생각치 못했던 소원 하나 비는 밤.

‘이젠 달력이 전해 주는 연휴를 벗어나 연휴를 만들어 가며 사는 여유를 허락해 주시길…. ‘

그 또한 감사하는 맘 위에 살포시 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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