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세사모

토요일 오전, 필라 외곽의 작은 도시 Ambler의 거리 풍경은 마치 먼 나라에 여행을 온 듯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른바 Multiplex라고 하는 대형 극장에 이미 익숙해진 내게 Ambler 영화관은 젊어 한 때 즐겨 찾곤 했던 연극 소극장을 추억하게 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초대해 준 벗들에 대한 고마움이 참 컸다.

그곳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을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냥 가슴이 아렸다. 영어로 번역한 제목 <The Red Herring>이 원제보다 더 가까이 마음에 다가 온 영화였다. 돌아가신 노무현대통령 팔이를 하는 이들은 차고 넘쳐도 그 이를 닮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가 쉽지 않듯, 변혁의 깃발을 들어 흔드는 시늉만으로 뭇매와 화살비를 맞고 쓰러진 참 잘난 사내에 대한 저주와 비아냥은 아직도 이어지지만 그가 품었던 꿈과 이상을 말하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쉽지 않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그 자리를 준비했던 이들이 마련해 준 팝콘과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일행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들렸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었는데(글쎄… 이즈음 내가 종종 범하는 우(愚) 가운데 하나. 상대방의 나이 가늠을 잘 못한다는 점. 나는 늘 젊었다는 착각의 잣대질 때문.)… 아무튼 그이들의 이야기.

‘이건(이 영화 상영은) 누가 주최해서 이루어 진 일인가?’, ‘지금 한국정부 싫어하는 사람들이 준비한 거 아닐까?’ 그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던 때, 뒷줄 좀 떨어져 앉아있던 젊은 여성 한 분(이 또한 내가 자주 범하는 우(愚)일 수도 있다. 여성들의 나이를 가늠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므로.)이 어르신 일행에게 다가가 말했다. ‘글쎄… 저도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필라세사모라고…. 세월호 참사…. 그거 아시지요…. 그 사건을 잊지말자고…. 그렇게 만들어진 단체래요…. 거기서 주관했다고 해요.’

이어진 어르신들의 질문, ‘거기 대표나 회장은 누구요?’ 젊은 여성분의 대답. ‘글쎄요? 잘은 모르겠고요. 아마 저기 저 앞자리에 계신 파란 점퍼입고 계신 분일거요…’

그러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필라세사모> – 내가 아는 한, 대표니 회장이니 하는 직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직이라고 하는 개념 조차 없는 그저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며’, ‘나와 이웃들이 안전하게 건강한 삶을 살고자’하는 뜻이 맞아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8년 전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이 모임의 동기가 되었다.

여남은 여명이 그 동안 꾸준히 이 모임을 함께 해 오고 있고, 나처럼 간혹 머리 숫자 채우고 박수치는 이들까지 합치면 사오십 여명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필라세사모 – 숱한 거짓 정보들과 자기 집단 이익에 사로잡혀 이웃의 아픔을 도외시하는 현실을 함께 직시하고 그저 각자의 삶 속에서 작게 나마 사람 답게 살아보고자 애쓰는 이들 정도로 나는 이 모임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영화 <그대가 조국The Red Herring>을 선택한 것은 참 걸맞았다.

조국이 꿈꾸었던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때를 기다리며…. 그날이 오면, 오늘도 꾹꾹 참아 삼키고 있을 그와 그의 가족들의 삭힌 한(恨)들이 풀리지 않을까..

**** 영화를 보며 며칠 전 북의 김여정이 했다는 말. “남조선 당국의 대북정책을 평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라는 말이 큰 공감이 되어 떠올랐는데…. 이름만 바꾸어 불러도 좋을 분(糞)들이 영화 속에 참 많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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