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

낮엔 여전히 찌는 여름이다만 아침 저녁은 어느새 가까이 다가 온 가을맞이를 재촉한다.

아침에 새들이 새들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일터로 나갔다가, 저녁 나절 새들이 새들에게 응답하는 소리를 들으며 계절이 바뀌는 하루해를 보낸다.

새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종종 나도 그 이야기에 끼어들 때가 있다.

그땐 비록 내 맘 속 소리지만 내가 내는 소리조차 좋다. 맑은 새소리처럼.

DSC04567 DSC04568 DSC04574

텃밭에서

텃밭에서 놀며 즐기는 기쁨 가운데 가장 큰 것을 꼽자면 단연 씨 뿌린 후 올라오는 새싹들을 바라 볼 때이다.

엊그제 처서處暑)도 지나갔다지만 내 일터는 여전히 찌는 더위였다. 하루의 피로를 안고 돌아와 며칠 전 뿌렸던 가을 채소 씨앗들이 파란 새싹들로 변신해 올라오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웃음이 인다.

이 나이에 철딱서니 없게 과한 말일지라도, ‘이 경이로움이라니, 아름다움이라니!’

살아오며 내가 누렸거나 내 곁을 스쳐간 경이로움과 아름다움들을 미처 깨닫지 못한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비록 내 삶 속 느즈막한 순간일지라도 텃밭의 즐거움을 허락해 주신 신께 감사! 그 감사를 느끼는 내 대견함을 허락하심에 또 감사!

마치 높은 가지 위에 앉아 있는 새가 된 듯이 읊조려보는 날에.

DSC04558 DSC04561 DSC04563 DSC04566

모를 일

아이들 개학이 가까워 지면서 부모들의 걱정이 커진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이런저런 물가들이 모두 뛰어 오른 탓에 아이들 개학 준비를 하는데 드는 경비 또한 덩달아 올라 학부모들의 부담이 커졌고, 어떤 소비를 우선시해야 하는지 학부모들의 선택이 어려워진다는 이즈음 상황을 전하는 뉴스였다. 이 뉴스는 덧붙여 전하길, 이런 상황은 개학 대목을 기다리는 이런저런 도소매 업체들에게도 그 여파가 이어질 것이란다.

내 가게 영업도 아이들 개학에 아주 민감한 영향을 받는 터인지라 눈 여겨 보게 된 기사였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디어진 탓인지, 아님 게을러진 탓인지, 그도 아니고 이젠  나이 들어 매사 너그러워진 탓인지, 눈 여겨는 보았으되 그저 덤덤하게 뉴스를 넘겼다.

저녁상 물리고 바깥 바람 쐴 요량으로 뒷뜰로 나가다 딱 마주친 사슴 가족. 나보다 늦은 저녁상 즐기시려 나섰던 사슴 가족 일행은 나를 보자 순간 그 자리에서 동상들이 되었다. 나 또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렇게 사슴가족들과 나는 한동안 마주 보고 서 있있다.

가만히 서서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며 한켠으로 안도가 되었는지, 엄마인지 아빠인지 모를 책임감이 충만한 녀석이 나를 주시하는 사이 나머지 가족들은 저녁상을 즐겼다.

사실 사슴 녀석들 탓에 쓸데없는 노동을 더하곤 한다. 어제만 하여도 손바닥만한 텃밭에 가을 채소 종자들을 뿌리곤 사슴 방지용 울타리 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따져보면  그 또한 내 욕심일 뿐.

어차피 밥상이란 나누는 일일 터이니.

허나 매사 대하는 태도에 덤덤함이 더해지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나이 들어 가며 모를 일이 하나 더해진다.

DSC04544 DSC04552 DSC04553 DSC04557

필라세사모

토요일 오전, 필라 외곽의 작은 도시 Ambler의 거리 풍경은 마치 먼 나라에 여행을 온 듯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른바 Multiplex라고 하는 대형 극장에 이미 익숙해진 내게 Ambler 영화관은 젊어 한 때 즐겨 찾곤 했던 연극 소극장을 추억하게 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초대해 준 벗들에 대한 고마움이 참 컸다.

그곳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을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냥 가슴이 아렸다. 영어로 번역한 제목 <The Red Herring>이 원제보다 더 가까이 마음에 다가 온 영화였다. 돌아가신 노무현대통령 팔이를 하는 이들은 차고 넘쳐도 그 이를 닮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가 쉽지 않듯, 변혁의 깃발을 들어 흔드는 시늉만으로 뭇매와 화살비를 맞고 쓰러진 참 잘난 사내에 대한 저주와 비아냥은 아직도 이어지지만 그가 품었던 꿈과 이상을 말하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쉽지 않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그 자리를 준비했던 이들이 마련해 준 팝콘과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일행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들렸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었는데(글쎄… 이즈음 내가 종종 범하는 우(愚) 가운데 하나. 상대방의 나이 가늠을 잘 못한다는 점. 나는 늘 젊었다는 착각의 잣대질 때문.)… 아무튼 그이들의 이야기.

‘이건(이 영화 상영은) 누가 주최해서 이루어 진 일인가?’, ‘지금 한국정부 싫어하는 사람들이 준비한 거 아닐까?’ 그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던 때, 뒷줄 좀 떨어져 앉아있던 젊은 여성 한 분(이 또한 내가 자주 범하는 우(愚)일 수도 있다. 여성들의 나이를 가늠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므로.)이 어르신 일행에게 다가가 말했다. ‘글쎄… 저도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필라세사모라고…. 세월호 참사…. 그거 아시지요…. 그 사건을 잊지말자고…. 그렇게 만들어진 단체래요…. 거기서 주관했다고 해요.’

이어진 어르신들의 질문, ‘거기 대표나 회장은 누구요?’ 젊은 여성분의 대답. ‘글쎄요? 잘은 모르겠고요. 아마 저기 저 앞자리에 계신 파란 점퍼입고 계신 분일거요…’

그러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필라세사모> – 내가 아는 한, 대표니 회장이니 하는 직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직이라고 하는 개념 조차 없는 그저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며’, ‘나와 이웃들이 안전하게 건강한 삶을 살고자’하는 뜻이 맞아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8년 전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이 모임의 동기가 되었다.

여남은 여명이 그 동안 꾸준히 이 모임을 함께 해 오고 있고, 나처럼 간혹 머리 숫자 채우고 박수치는 이들까지 합치면 사오십 여명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필라세사모 – 숱한 거짓 정보들과 자기 집단 이익에 사로잡혀 이웃의 아픔을 도외시하는 현실을 함께 직시하고 그저 각자의 삶 속에서 작게 나마 사람 답게 살아보고자 애쓰는 이들 정도로 나는 이 모임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영화 <그대가 조국The Red Herring>을 선택한 것은 참 걸맞았다.

조국이 꿈꾸었던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때를 기다리며…. 그날이 오면, 오늘도 꾹꾹 참아 삼키고 있을 그와 그의 가족들의 삭힌 한(恨)들이 풀리지 않을까..

**** 영화를 보며 며칠 전 북의 김여정이 했다는 말. “남조선 당국의 대북정책을 평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라는 말이 큰 공감이 되어 떠올랐는데…. 이름만 바꾸어 불러도 좋을 분(糞)들이 영화 속에 참 많더만.

2 3 4

희망 또는…

내일 가보려 하는 다큐 영화 <그대가 조국>을 보기 전에, 읽어 본지 겨우 몇 달 지나지 않았건만 다 잊어 버린 책을 꺼내 대충 훑어 다시 읽었다.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 <조국의 시간>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단이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는 해진 그물을 묵묵히 꿰매며 출항(出港)을 준비하는 어부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자 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한 말을 되뇌이며. “사람은 패배를 위해 만들어 지지 않았다. 사람은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다.”>

책의 저자 조국은 바로 그 전 페이지에서 또 다른 책의 주인공의 말을 소개하고 있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 끝부분에 나오는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가 쓴 편지의 마지막 문구. “견디며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저자 조국은 이 책의 마지막 각주로 ‘몬테크리스토 백작’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달아 놓고 있다.

<* 이 유명한 소설에서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여러 사람에 의해 나폴레옹을 지지하며 반역을 꾀한다는 모함을 받고 14년 동안 감옥에 갇힌다. 모함자 중에는 제라드 드 빌포르 검사대리가 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반역 세력의 우두머리임을 숨기기 위해 에드몽의 편지를 불태워 버리고 에드몽을 재판도 없이 투옥해 버린 후 무기 징역수로 만들었으며, 이후 승승 장구해 검찰종장이 된다. 이후 빌포르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내용을 조국답게 참 점잖은 표현으로 각주를 달아 놓았다.

사실 소설 속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개명한 이후 무자비한 복수극을 펼친다. 특히 빌포르 가문에 대한 복수는 당테스 스스로 너무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의 복수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처절했다.

비록 소설 속 이야기지만 ‘패배를 넘어서는 희망’보다는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행위에 대한 심판으로써 의 복수’가 내게 더욱 와 닿는 이즈음에….

아직도 난 어리거나 최소한 늙지는 않은 듯.

위키 낱말 사전은 “야비 (野卑/ 野鄙) 하다”라는 말을 이렇게 풀고 있다. <사람의 성질이나 하는 짓이 곱지 못하고 천하고 야하며, 도리에 어긋나다.>라고.

‘비겁하다’, ‘치사하다’, ‘교활하다’, ‘얍삽하다’ 등등 비도덕적인 일들을 일삼는 사람들의 행위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글쎄? 사람마다 다 세상 바라보는 눈높이와 그를 재는 잣대의 길이가 달라 옳고 그름을 정확히 재고 판단할 유일한 저울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저 내 상식과 작고 좁은 내 머리 속 생각만으로 따져보자면 최근 십 수년 이래 ‘세월호 참사를 겪은 가족들’과 ‘조국 전 장관과 그의 가족들’에게 팔매질 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일컫는 말로는 이게 가장 적합할 듯 하다. – <야비 (野卑/ 野鄙)>

필라의 좋은 친구들이 모처럼 기지개 켜고 사람 깨우는 자리를 마련했단다.

주말에 아내와 함께 가보려 한다.

세월호 6주기

기도

1.
오랜만에 세탁물을 찾으러 온 그의 얼굴은 텁수룩하게 기른 턱수염 탓인지 매우 수척했다. “장사는 좀 어때?”라며 묻는 그의 목소리와 표정은 좀 공허했다. “뭐, 그저 그렇지만 아무래도 여름철이라 한가한 편…”이라는 내 대답에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 틈새로 아내가 그에게 물었다. “어떠세요? 부인께선….”

잠시 두 눈을 껌벅 이던 그가 입을 뗀 말, “떠났어요.”

나보다 몇 살 위인 Charlie는 삼십 년 가까운 내 단골이자 내 이민생활의 좋은 멘토였다. 큰 회사의 중견간부로 있다가 은퇴한 후 그와 그의 아내는 이런저런 병마와 싸우며 지냈다. 그는 지팡이를 벗삼아 내 가게를 들락이면서도 늘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었다.

어제, 아내가 세상 떠난 짧은 인사를 던지고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남긴 그 공허한 잔상이 아직 내게 이어지고 있다.

2.
이번 주말, 살아 생전에 후배들의 존경을 받으며 외길 걸었던 선배의 삼주기 기일을 맞아 필라 인근에 사는 그의 후배들이 함께 하려 했었다.
그러다 듣게 된 참으로 느닷없는 부음(訃音). 선배의 아들 노릇했던 아직 쉰 나이에 이르지도 못한 맏사위의 갑작스런 떠남.

그 부음을 알리는 선배 가족의 알림. “……..정말 통탄스럽게도……담에 연락할 때는 정말 더 밝은 소식으로 만나기 바래요.”

아직 내 속 아림이 이어지고 있다.

3.
죽음 앞에 서면 나는 예수쟁이가 된다. 더욱 예수쟁이가 되고 싶다. 죽음이란 단지 어딘가 닿을 또 다른 떠남이기에. 하여 오늘을 다시 되새기게 하는 종말론적 삶을 재촉하는 깨침이기에.

… Charlie와 선배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밤에.

바다

살다 보면 종종 생각지도 않은 일을 경험할 때가 있다.

지난 목요일이었다. 주말 장사 준비를 마친 친구가 시간을 내어 내 가게를 찾아왔다. “이번 일요일에 특별한 계획 있으신가?”, 나는 별 생각없이 대답했다. “글쎄 뭐 별로 특별한게… 없지!.”

“잘됐네, 바다바람이나 한번 쐬러 갑시다!”하는 그의 권유에 나는 흔쾌히 “좋구먼!”하며 맞장구를 쳤었다.

사실은 주말에 가을 무와 배추를 키울 텃밭 준비를 해볼까 하는 계획이 있었다만, 찌는 더위가 이어지고 있고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으므로 쉽게 뒤로 물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보다는 친구 따라 바다바람도 쐬고, 바닷물에 발도 담구어 보고 모래사장을 걸어보는 일도 좋겠다는 생각에 흔괘히 응했고 아내도 좋다고 하였다.

이어진 친구의 말. “특별한 준비물은 없고, 가벼운 점퍼는 좀 챙겨서 요셔!”

그리고 어제 아침 집을 나서기전 그가 말한 ‘가벼운 점퍼’에 대한 생각에 잠시 빠졌었다. 바닷가라 일기가 불순할 수도 있으니 혹 그에 대한 예비를 하라는 뜻이였나? 아님 너무 따가운 햇살을 피할 요량으로 준비를 하라 한 것일까? 아무튼 아내와 나는 가벼운 점퍼 대신 긴 팔 셔츠 한 장씩을 준비해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 뉴저지 친구 집으로 향했었다.

그렇게 친구집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친구의 계획은 낚시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일정이었다. 몇 달 전에 친구 내외가 처음 낚시배를 타 보았는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며 그 재미에 우리 내외를 초대한 것이었다.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낚시를 쫓아 다녀 본 경험은 있었지만, 낚시배를  타본 적은 없는 우리 내외는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낚시배에 올랐다. 날씨는 참 좋았다. 낚시배에는 낚시대와 미끼 뿐만 아니라 미끼를 끼워 주는 손길도 제공해 주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주 낚시 어종은 flounder(넙치 또는 가자미)라고 하였다. 선원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나는 바닷가 풍경을 담기 바빳고, 평생 처음 해 보는 낚시배 경험에 조금은 들떠 있었다. 배가 만(灣)을 빠져 나가 바다로 나가기 전 까지는.

탈 때는 제법 큰배라고 생각했었는데 바다로 나가니 일엽편주 그야말로 작은 잎 파리 위에 읹아 있는 느낌이였다. 제법 높은 파도를 거스르며 나아가는 배는 앞뒤로 크게 요동을 쳤다. 그 때만 해도 나는 사진 찍기에 바빴었다. 바다와 보이는 인근 풍경들이 그저 새로울 뿐이었다.

드디어 첫 포인트에 이르러 배가 멈추자 짧은 뱃고동 신호와 함께 낚시꾼들은 낚시줄을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만 해도 참 좋았었다. 주변에서 제법 큰 고기들을 낚아 올리면서 환성이 터졌고, 내심 기대도 커지기 시작했다. 헌데 배가 심하게 좌우로 출렁거리며 요동쳤다.

다시 짧은 뱃고동이 울리자 모두들 낚시줄을 거두어 들이고 두번 째 포인트로 이동했다. 그즈음이었을 게다. 내 몸에 이상이 왔다. 배에 출렁거림이 내 머리와 내 뱃속으로 이어져 내 스스로 내 몸을 제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서야 생각난 친구의 말, ‘가벼운 점퍼’ 추웠으므로.

그렇게 네 시간 여 낚시배에서의 내 첫경험은  참담하였다.

그렇게 얻어 온 sea robin(성대 또는 바다울대라고…)  몇 마리가 어제의 수확? 그리고 바다.

*바다 – 남의 글과 말로만 전해 듣고 나름 내 작고 좁은 생각 속에 가두어 두었던 바다 –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 또 바다 – 종종 민심에 견주어 일컬어 지곤 하는 바다 – 그 비유는 참 적절하다만 깨닫기는 정말 쉽지 않을 듯.

*** 그리고 다시 바다 – 아내와 참 좋은 친구 내외 – 어제 내가 누린 바다.

DSC04449 DSC04453 DSC04456 DSC04462 DSC04464 DSC04466 DSC04467 DSC04473 DSC04475 DSC04477 DSC04481 DSC04490 DSC04504 DSC04509

시간에

가게 문을 닫으려고 준비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는 내용이 대개 뻔하다. ‘곧 문닫지요? 제가 맡긴 옷이 오늘 저녁 꼭 필요한데…. 지금 가고 있는 중인데…. 교통사정이 복잡해서…. 5분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대충 그런 내용의 전화가 대부분이어서 때론 내 귀가길을 한참 동안 붙잡곤 한다. 하여 반갑지 않다.

아내가 전화를 받더니 한국말로 응대를 한다. “잠깐만요…”하더니만,  “한국인데…”하며 내게 전화기를 건넨다.

“예, 여보세요…”하는 내 말에 수화기에서 들려온 말, “야! 나야, 나!”, 그 목소리만으로도 대뜸 누군지 알아채곤 던진 내 말. “엉? 너 아직 살아있냐?” 중, 고, 대학교 동창인 박(朴)이었다.

얼굴 본 지 십 수년이 지나 목소리로 만나 떠든 그와의 수다로 아내의 귀가 길 발목을 잡았다.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일도 정년으로 그만둔 지 벌써 다섯해가 되었단다. 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한 지도 제법 되었지만 아직도 낯설단다. 백세를 넘기신 그의 어머니 이야기와 아흔 여섯을 넘기신 내 아버지 이야기, 서로의 아이들 이야기…

“야! 니 목소리 들으니 넌 하나도 안 변하고 옛날이랑 똑같은 것 같은데…”라는 그의 물음에 내가 던진 말, “글쎄… 아무 생각없이 살아서 그런가?”

십 수년 전에 그를 만났을 때 혼자였던 그의 생활이 궁금해 내가 물었다. “그래, 누구랑 사니?”. 그의 대답, “응, 십년 됐어. 재혼한지.”

“그래, 잘 했다. 늙막에 함께 하는 동무 있어야지. 뭐 딴 거 있냐? 건강하자!”

집에 돌아와 저녁상 물린 후 뒷 뜰에 앉아 해질녘까지 시간에 대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새롭게 다가오는 꽃들의 이야기도 들으며.

오래된 삶의 이야기들을 들으려 이즈음 다시 넘기고 있는 책장들은 그대로 덮어 둔 채, 내가 맺어 온 짧은 연(緣)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는 밤에.

DSC04399 DSC04402 DSC04409 DSC04410 DSC04411 DSC04413 DSC04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