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닫는 일도 기쁨이겠다만, 종종 지나간 것을 되새겨 얻는 즐거움도 제법 쏠쏠하다.

두어 주 전에 코로나와 씨름 하노라고 방에 갇혀 며칠을 보내며 다시 읽어 본 소설 <나무 위의 남작> 이었다. 얼추 스무 해 전에 읽었던 그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새롭게 눈 뜬 기분이었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나무 위의 남작> 속 주인공 코지모 남작은 그가 열 두살 되던 해인 1767년에 일생을 나무 위에서 살기로 작심하고 나무 위로 올라간다. 이후 평생을 마치 타잔 처럼 나무와 나무를 타고 지낸다. 타잔과는 다르게 땅 한번 밟지 않고 나무 위에서만 삶을 이어가다가 마침내 죽어 땅으로 돌아와 묻혀 남긴 그의 비문(碑文)이다. –  <코지모 피오바스코 디 론도 – –나무 위에서 살았고 —- 땅을 사랑했으며 — 하늘로 올라갔다.>

그가 어린 나이에 나무 위로 올라가게 된 까닭은 그의 아버지에 대한 반항 때문이었는데, 아버지에 대한 상징은 곧 기득권 세력, 부패한 체제를 일컫고 있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대변혁기를 남들 보다는 조금은 높은 나무 위에서 당시 사람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뇌하며 행동하는 주인공 코지모 남작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왔다.

그가 비록 현실의 부조리와 부패에 저항하는 뜻으로 나무 위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그는 땅과 사람을 사랑했던 이었다. 그는 남들 보다 조금은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꿰뚫어 보며 살았다. 그는 사람과 사람살이 그리고 자연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품고 살다 갔다. 나무 위에서.

어제 텃밭과 꽃밭 잡초를 뽑다가 문득 바라본 하늘이었다. 하늘을 향해 꼭대기로 치솟는 나무들의 새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던 말. ‘꼭대기’

꼭대기에 닿으면 그저 잊지 말아야 할 말, 바로 ‘겸허’

이젠 점점 하늘에 가까워 가는 나이에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할 말 , 바로 ‘겸허’ 그리고 오늘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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