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앞 공사판은 곧 끝날 듯 끝날 듯 하며 지루하게 이어져 족히 삼 사백 피트(백 미터 이상) 걸어서 세탁물을 들고 오가는 손님들에게 미안함 마음 그치지 않는다.
한 물 간 업종이라는 말도 많고, 더하여 접근성 제로에 이르는 공사판 환경임에도 찾아주는 손님들 덕에 바쁜 한 주간을 보냈다.
지난 주말에 텃밭 열무를 거둘까 하다가 한 주 미루었는데 그새 열무 꽃밭이 되고 말았다. 텃밭 농사 흉내내기 삼년 차, 가장 쉬었던 게 열무농사였다. 그냥 씨 뿌려 놓으면 그만 이었는데, 아뿔사! 내 게으름으로 그만….
처음 경험하는 일이므로 구글(google)신(神)에게 물었다. “열무꽃이 피었을 때…”라고.
그렇게 만나 문태준 시인의 극빈(極貧)이라는 시였다.
<극빈極貧 /문태준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가녀린 발을 딛고
3초씩 5초씩 짧게짧게 혹은
그네들에겐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
날개를 접고 바람을 잠재우고
편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설핏설핏 선잠이 드는 것만 같았다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
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
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 >
열무꽃 덕에 이웃에게 결코 넉넉치 않았던 내 삶을 잠시 돌아보는 시 한편 곱씹다.
*** 거센 열무 꽃대 잘라 내고 여린 열무 잎 다듬어 거두다. 아침 새소리는 경쾌하고 저녁 나절 새소리는 넉넉하다. 새 소리에 취해 열무 다듬는 시간에 누린 행복이라니. 그 짧은 시간만큼은 부끄럽지 않을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