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異端)

며칠 전 아들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이 눔이 갑자기 웬 일?’하는 맘으로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웬 일이셔? 엊그제 봤는데…”하는 내 인사에 녀석은 평소와 달리 가래 잔뜩 낀 목소리로 응답했다. “몸이 좀 이상해서… 테스트했더니 파지티브라고…” 그렇게 아들놈은 바이러스 확진 소식을 전했다.

며칠 동안 가보지도 못하고 아침 저녁으로 아들과 며느리 안부를 묻는 전화만 하며 보냈다. 행여? 하는 마음으로 돌아본 우리 내외는 무사하다.

나흘 째. 녀석이 입 맛이 돌아왔단다. 그래 안심이다. 먹는 즐거움을 찾았다니!

며칠 동안 이래저래 복잡한 머리 속 달래려고 꺼내 들었던 책 <성서 밖의 예수>이다.

벌써 이십 수년 전 일이 되었다만, 한 때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펴낸 글들에 푹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 참고 서적 중 하나로 대충 읽어 보았던 <성서 밖의 예수>였다.

종교사회학자인 일레인 페이젤(Elaine Pagels)이 쓴 이 책의 원제는 ‘영지주의 복음서(Gnostic Gospels)’이다.

예수가 죽은 이후 기독교가 형성된 이래 최초의 이단(異端)이 되어 역사의 패배자가 된 영지주의에 대해 개설해 놓은 책이다.

저자 일레인 페이젤(Elaine Pagels)은 만일 영지주의자들의 복음서가 기독교의 경전(이른바 성서)에 정경의 일부가되었다면(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처럼) 오늘날의 기독교보다는 훨씬 나은 종교가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테면 영지주의자들의 찬양했던 하나님이 어머니이자 아버지였던 점, 인간적인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와의 관계, 부활에 대한 상징적인 이해, 무조건적임 믿음에 앞선 하나님과 나와의 지식적 만남 등등… 나름 충분히 이해할 수 그들의 신앙과 주장이 이단으로 치부되어 역사 속에 묻혀버린 것을 아쉬어 하는 지은이가 남긴 말이다.

<내가 영지주의에 열중했던 것은 정통파 기독교에 대항하고 영지주의를 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역사학자의 임무는 어느 편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그렇게 닿은 이단에 대한 내 생각 하나.

무릇 모든 종교의 교단(敎團)이란 그들이 내세운 최초 선각자들의 눈으로 본다면 모두가 이단 아닐런지?

예수, 석가, 무함마드 어쩌면 공자까지도.

아들 녀석 덕에 우연히 꺼내들어 잠시 빠져 들었던 <성서 밖의 예수>. 이십 수 년에 밑줄 그었던 곳엔 별 감흥 없이 새롭게 밑줄을 다시 그으며 읽었다.

내 뜰엔 봄 꽃이 다시 피고 두어 주 전에 파종한 텃밭엔 새 싹이 오르고…

무엇보다 내 아들 녀석 입 맛이 돌아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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