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내가 26년생…. 지금은 22년…. 백 년이 얼마 안 남았네…. 참 오래도 살았다. 이젠 가야 되는데…” 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시며 중얼거리시는 아버지는 이즈음 정신이 아주 맑으시다. 식사량도 그렇고 잡숫는 즐거움도 맘껏 누리시는 편이다. 오늘 같기만 하시다면 백수(白壽) 아닌 백수(百壽)도 욕심만이 아닐 듯 하다.

어제 이발을 했다. 이발을 해주시는 이가 내게 덕담을 건넸다. “아니 어쩜 이 연세에 흰머리 없이 까마세요.” 그러던 그가 깜작 놀라며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아이고, 이거 어떡하죠? 여기 머리 빠진 걸 모르고 너무 짧게 짤라 버렸네요.  어떡하죠?” 하며 미안해 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뒤통수는 내가 볼 수도 없고, 내 머리 쳐다볼 사람도 없고, 설마 구멍난 거 본들 뭐 문제 있나요?”

“참 낙곽적이신데도 스트레스를 받으시나 봐요? 원형탈모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던데요…”계속되는 그 이의 말을 이렇게 막았었다. “스트레스는 무슨… 그냥 때 되니까 빠졌다 났다를 반복하는 것이지요. 아직은 다시 나니까 괜찮아요. 머리털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는데… 그저 나이들어 가는 증상일 뿐인걸요.”

오늘 아버지와 잠시 함께 했던 시간을 빼곤 온종일 뜰에서 지냈다. 화단에 잡초를 뽑고 멀칭을 입히고, 여름 구근과 응달 식물도 심고, 꽃씨도 뿌렸다. 토마토와 고추 모종도 심고, 완두콩, 시금치, 열무, 배추, 상추 등속이 올라오는 텃밭 잡초들도 뽑아 주었다.

백 년, 칠십 년이 아니라 내겐 아직 하루 해가 짧다.

저녁나절 간지러운 봄바람 타고 내 귀를 홀리는 새소리와 풍경소리에 이는 춘정(春情)을 달래려 한 잔 술을 벗삼다.

분홍 봄꽃은 비나리로 연등처럼 걸렸고 하늘엔 시간이 비행기를 타고 흐른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려 보는 말. “스트레스 없는 사람, 걱정과 염려 없는 사람, 분노와 미움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냥 시간을 효소 삼아 사는게지.”

시간(時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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