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내가 대통령 선거 투표를 처음 해 본 때는 2000년도이다. Al Gore와 George W. Bush가 붙었던 그 해 선거에서 나는 아시안계 정치 참여단체인 80-20 Initiative의 이사자격으로 Al Gore를 위한 선거 운동도 했었다.

한국에서는 내가 투표권을 부여 받을 나이부터 이민을 올 때까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다.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민 온 이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기 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었다. 그러다 맘먹고 시민권을 갖고 뒤늦게 첫 대통령 선거 경험을 한 것이다.

나이 육십이 넘을 무렵에 품은 꿈이 하나 있었다. 예순 다섯이 되면 가능한 이중 국적을 얻어 한국 대통령 선거도 한 번 해 보아야겠다는 꿈이었다. 막상 그 나이에 이르자 나는 망설였다. 어차피 다시 돌아 가 누울 한 뼘의 땅도 없는 처지이고, 돌아가 살 마음도 없고, 내 아이들도 돌아갈 가능성이 거의 전무한데 그 꿈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 하는 물음 앞에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그 꿈을 접은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비록 권리는 없으나 관심마저 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법적 지위로야 어찌되었던 나는 근본이 그저 한국인이므로.

그렇게 보게 된 한국 대통령 후보 토론이었다.

나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가름이나 좌나 우를 나누는 일은 그리 마뜩찮게 여기는 편이다. 무엇보다 내가 선 자리를 매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갈수록 그 자리매김이 힘든 일은 점점 많아진다. 다만 그 양단의 극에 다른 이야기들은 거의 듣지도 않거니와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조차 피하는 편이다.

내가 유일하게 즐기는 페북을 통해 오래 전 어렸을 때 친구들의 소식들을 힐끔거리론 하지만, 친구 맺기를 거의 하지 않는 까닭은 나와 세상보는 생각이 이미 너무 멀리 떨어진 친구들과 공연히 어색한 관계를 잇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저 옛 추억으로 반가움을 되새기고 말 뿐.

이젠 칠순잔치 소식들을 올리는 친구들과 내가 서로 결코 꺾이지 않을 고집스런 생각을 나누며 시간을 허비 할 순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민주적 사회에서 선거란 개인이나 이런 저런 각종 이익, 이해단체들이 자신이나 속한 단체들의 이해관계에 맞는 대표자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하여 자기 주장도 펴고, 아까운 돈과 시간을 보태기도 하고, 속한 공동체의 뜻을 하나로 묶어 내는 일도 하는 법이다.

문제는 대표자로 나서는 후보자들이나 그를 내세우는 정치집단과 표를 행사하는 개개 유권자나 각종 이해 단체들 사이에 난무하는 거짓과 사기질들이다.

그 거짓과 사기질을 잘 가리는 유권자들이 표를 제대로 행사하는 사회가 민주적으로 앞서 나가는 법일 터이고.

그렇게 든 몇 가지 생각들.

우선 누가 뭐라고 떠들어도 대한민국은 정말 짧은 시간에 너무나 빨리 좋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첫째이다. 그 생각의 까닭은 단순하다. 내가 비록 투표권은 행사하지 못했지만 처음 투표권을 가졌던 1970년 대초만 하여도 이편 저편의 세가 99.9대 0.1이었다. 그것이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이젠 거의 51대 49 다툼이 되었으니 참 많이 바뀌었다. 그 다툼의 내용이야 어떠하든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이 아니라는 것만 하여도 크게 나아진 일 아니겠나? 더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여건임도 불구하고.

둘째는 사람의 생각이나 모습이 바뀌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심상정과 안철수를 보며 가져 본 생각이다.

세째는 사람살이 발전해 나아가는 방향에는 언제나 맞바람이 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윤석열을 보며 든 생각이다. 그를 보며 내가 공연히 부끄러워진다. 허나 역풍으로 하여 사람살이 좀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하는 힘이 더욱 거세진 역사도 종종 겪어온 일이다.

오래 전 0.1이었던 숫자가 이번 선거에서 51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오래 또아리 틀었던 양 극단(極端)들이 모두 한 칸 씩 밀려나 사라지는 역사가 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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