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일기예보는 참 정확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일기예보대로 눈이 하얗게 쌓였다. 쌓인 눈 위로 쌀가루 같은 눈발이 쉬지 않고 있다.
곧 설날이란다. 오늘의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저 하루일 뿐이다만, 아득한 그 시절 섣달 그믐이면 어머니는 밤새 불린 쌀 한 말이 담긴 커다란 양푼(그땐 ‘다라이’라했던가?)을 목이 휘어질 듯 이고 방앗간으로 향하셨다. 나는 그 뒤를 졸래졸래 따르고.
덜컹덜컹 피댓줄 돌아가는 소리와 찜통에서 나오는 허연 김들이 가득한 방앗간 모습이 선하게 다가온다. 어머니가 잠시 목을 푸는 사이에 밤새 불린 쌀은 하얀 가루가 되어 커다란 사각 시루떡이 되고, 절구판을 거쳐 길고 따끈한 흰 가래떡으로 변했다.
어머니는 다시 목을 꼿꼿이 세우시고 그 무거웠을 가래떡 양푼을 이고 집을 향해 큰 걸음을 보채셨다. 나는 어머니가 손에 쥐어 준 따끈한 가래 떡을 양손에 쥐고 한입 베어 물며 어머니를 따라 총총 걸음을 걸었었다.
그래! 아주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눈 내리는 오늘 아침 바람은 차고 매웠다. 눈을 치우고 가게로 나가려다가 포기하고 눈 그치기를 기다렸다. 이 게으름은 다 내가 나이든 탓이다.
문득 눈에 들어 온 작은 새 한 마리. 카메라를 찾아 들고 새와 함께 한참을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카메라 셧터를 누르는 순간, 새는 어찌 그리 내 손놀림을 빨리도 알아채지는 푸드득 날아 자리 옮기기를 여러 번 하였다. 나는 놀이였는데 작은 새는 삶을 위한 몸부림 친 노릇이었는지도 모른다.
열 두시가 다 되어서야 눈이 멎었다.
추위를 이기노라 옷으로 몸을 두 배나 불리우고 드라이브웨이를 덮은 눈을 치웠다. 삽질이 이젠 버겁다는 생각이 든 것은 몇 해 전 일이다만, 그래도 ‘운동 삼아’라는 생각으로 snow blower를 장만하는 일은 매해 미루고 있었는데 이젠 ‘때가 되었나?’ 싶게 눈 치우는 일이 제법 고되다.
거의 다 마치었다 싶을 때가 가장 힘든 법이라고 온 몸에 땀이 흥건히 배이고 숨도 거칠어질 즈음 앞집 네이든(Nathan)이 성큼성큼 내게 다가 오더니만 “제가 도와 드립죠” 말을 건넸다. 그의 손에 들린 삽은 족히 내 삽 크기의 두 배는 되었다.
종종 친구처럼 이야기를 건네는 유태계 네이든은 사십대 중반 쯤(내가 나이를 물어본 적은 없으니…)이다.
그 덕에 쉽게 눈 치우는 일을 마친 후, “내가 탈진할 무렵에 도와주어 정말 고맙소, 눈 치울 때면 늘 그렇듯 마지막 조금 남았을 때 정말 힘든데… 정말 고맙소.”라고 던진 내 인사에 그가 보낸 답이 내 다리에 남은 힘을 쪽 빼놓았다.
“뭘요! 그저 아들처럼 생각하세요!.”
그랬었다. 네이든이 보기에 나는 그저 작고 초라한 노인이었다. 눈 치우는 일조차 버거운.
나는 사십대 사내를 친구로 생각하며 살고 있었고.
나를 깨닫는 순간이 바로 신(神)을 만나는 순간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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