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잔디 깍기는 마지막이 아닐까? 기온이 가파르게 떨어지며 가을이 깊어 간다. 잔디를 깍으며 스쳐 지나가는 지난 생각들 위에 넘치는 감사를 맛보다.
“한 이태만에 아범이 돌아왔는데 거지도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었단다.” 외할머니가 큰외삼촌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시며 손주들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셨던 말씀이다. 한국전쟁 당시 국민방위군으로 끌려 가셨다 두어 달 만에 피골이 상접한 채로 집으로 돌아오셨던 내 큰외삼촌에 대한 외할머니의 기억은 돌아가실 때 까지 이어졌다. 두 어른 모두 떠나신 지 오래된 이야기다만.
“이눔아! 넌 내 덕에 사는게야!” 어머니가 내 젊은 시절을 기억하시며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셨던 말씀이다. 1980년 오월, 늦깍이 복학생이었던 나는 특별하게 무슨 한 일도 없었건만 계엄사 합수부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했었다. 그해 오월과 유월은 아직도 내 기억속에 아픔으로 남아있는 세월이다. 돌아가실 때까지 잊을 만하면 어머니가 되뇌이셨던 “아눔아! 넌 내 덕에…”하실 때면 나는 그저 웃었었는데, 어머니는 그런 내 웃음을 아주 못마땅해 하셨었다. 그 어머니 떠나신 지도 어느 새 두 해가 가까워 온다.
그리고 어제 정말 모처럼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짧은 저녁 시간을 함께 했었다. 필라 세사모(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 벗들이다. 다들 먹고 사는 방법들(직업)도 다르고 주관심사도 다르지만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들을 공유하며 하나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참 좋은 이웃들이다.
이민자들의 권익, 소수민족들 사이의 연대, 도시빈민들에 대한 관심, 열악한 노동조건들에 대항하며 싸운 노동조합, 미국내 만연한 총기사고에 대한 안전 방안, 한반도 통일에 대한 염원 등등 잊지 않고 기억하며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보자고 애쓰는 이들이다.
“왜? 그 어린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만인이 보는 순간에 손 하나 제대로 쓰는 노력을 볼 수 없었는가?” 그 기억을 잊지 말고 그 까닭을 밝혀보자는 뜻에 지치지 않는 참 좋은 친구들이다.
이미 서늘해진 날씨건만 잔디를 깍다 보니 등에 땀이 배었다. 그렇게 내 맘속에 배어 나는 감사였다.
이 나이에 만나 즐거운 참 좋은 벗들이 있음은 내 삶이 누리는 정말 큰 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