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작지만 더할 나위 없이 큰 감사가 넘친 올 추수감사절 연휴는 내 삶 속에 누린 큰 축복  중 하나일게다.

이제껏 살며 내가 선택했던 몇 안 되는 옳은 판단 가운데 하나, 어쩌면 으뜸으로 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인데 바로 가족들을 위해 한 끼 밥상을 준비하는 일이다.

모처럼 집에 온 아들 딸 내외와 함께 준비하고 나눈 밥상에서 누린 행복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을 만치 크다.

감사의 절기를 따로 정해 둔 옛 사람들의 지혜는 가히 밝다.

누리는 행복을 곱씹게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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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에

엊그제가 봄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가을도 저물고 아침이면 두꺼운 옷을 찾는 계절이 되었다. 이것 저것 한 해를 마무리 해야만 하는 일들과 다가오는 새해를 준비할 일들로 이렇게 저렇게 머리 속 생각들이 많다. 너무 빨리 지나간 시간들 속에 쌓인 후회와 부끄러움도 많고, 다가 올 시간에 대한 염려와 걱정 또한 함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한 주간은 할 수 있는 한 넉넉한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최대로 넉넉하고 단순하고 더하여 여유롭게 보내려 한다. 추수감사절이 끼인 한 주간이기 때문이다.

그저 바쁘게 곱씹어 보고 싶은 것들은  감사다. 지난 시간들 속에서 찾아내야 할 감사들과 오늘 내가 누리면서 모르고 있는 감사들 그리고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한 감사까지 누려 볼 생각이다. 감사는 누구에게 주는 것 이전에 내가 누리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감사절을 앞두고 무겁게 쳐진 가지들로 버거워 하는 옆 뜰 전나무들 무게도 덜어 주고, 겁 없이 하늘 높이 재려는 양 치솟는 뒤뜰 언덕배기 나무들을 맘 먹고 몽땅 베어 내었다.

무릇 감사란 누리고 있던 것들을 베어 내고 난 자리에서 더 크게 자라는 것이 아닐까?

다시 봄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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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들

올해 잔디 깍기는 마지막이 아닐까? 기온이 가파르게 떨어지며 가을이 깊어 간다. 잔디를 깍으며 스쳐 지나가는 지난 생각들 위에 넘치는 감사를 맛보다.

“한 이태만에 아범이 돌아왔는데 거지도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었단다.”  외할머니가 큰외삼촌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시며 손주들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셨던 말씀이다.  한국전쟁 당시 국민방위군으로 끌려 가셨다 두어 달 만에 피골이 상접한 채로 집으로 돌아오셨던 내 큰외삼촌에 대한 외할머니의 기억은 돌아가실 때 까지 이어졌다. 두 어른 모두 떠나신 지 오래된 이야기다만.

“이눔아! 넌 내 덕에 사는게야!” 어머니가 내 젊은 시절을 기억하시며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셨던 말씀이다. 1980년 오월,  늦깍이 복학생이었던 나는 특별하게 무슨 한 일도 없었건만 계엄사 합수부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했었다. 그해 오월과 유월은 아직도 내 기억속에 아픔으로 남아있는 세월이다. 돌아가실 때까지 잊을 만하면 어머니가 되뇌이셨던  “아눔아! 넌 내 덕에…”하실 때면 나는 그저 웃었었는데, 어머니는 그런 내 웃음을 아주 못마땅해 하셨었다. 그 어머니 떠나신 지도 어느 새 두 해가 가까워 온다.

그리고 어제 정말 모처럼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짧은 저녁 시간을 함께 했었다. 필라 세사모(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 벗들이다. 다들 먹고 사는 방법들(직업)도 다르고 주관심사도 다르지만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들을 공유하며 하나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참 좋은 이웃들이다.

이민자들의 권익, 소수민족들 사이의 연대, 도시빈민들에 대한 관심, 열악한 노동조건들에 대항하며 싸운 노동조합, 미국내 만연한 총기사고에 대한 안전 방안, 한반도 통일에 대한 염원 등등 잊지 않고 기억하며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보자고 애쓰는 이들이다.

“왜? 그 어린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만인이 보는 순간에 손 하나 제대로 쓰는 노력을 볼 수 없었는가?” 그 기억을 잊지 말고 그 까닭을 밝혀보자는 뜻에 지치지 않는 참 좋은 친구들이다.

이미 서늘해진 날씨건만 잔디를 깍다 보니 등에 땀이 배었다. 그렇게 내 맘속에 배어 나는 감사였다.

이 나이에 만나 즐거운 참 좋은 벗들이 있음은 내 삶이 누리는 정말 큰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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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껍(식겁食怯)

그야말로 씨껍(식겁食怯) 했던 저녁 한 순간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우체통에 메일을 집어 들고 집안에 들어와 보니 세무서(IRS)에서 보낸 편지가 있었다. ‘웬 IRS?’하며 뜯어본 봉투 속엔  내겐 어마 무시한 금액의 세금을 부과하는 서류였다.

내용인즉은 2019년 그러니까 삼 년 전에 내가 보고한 세무보고가 실제와 달라 나름 지(IRS)들이 알아보니 내가 누락한 보고가 있어 추적해 본 결과 이에 대한 세금 7만 2천여불의 세금을 내야한다는 것이었다.

고된 일 마치고 돌아와 밀렸던 시장기가 싹 가시는 편지였다.

그들이 보낸 메일을 꼼꼼히 따져 볼 필요도 없이 훅 훑어보다가 그냥 웃고 말았다.

도대체 공무원들이란?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쩌겠나? 나는 한 동안 내 정말 아까운 천금 같은 시간을 이 멍청한 공무원 시스템 또는 공무원들과 씨름할 밖에.

이건 싸움도 아니고.  아무튼 한동안 쓸데없는데 아까운 내 시간을 들여야만 할 듯.

내 아까운 시간을 뺏는 이 멍청한 놈들에게 몇 푼 안 되지만  내 세금이 쓰인다는 것 조차  불쾌한…

공연히 식겁했던 저녁에.

달(月)

아직 서리도 내리지 않았는데 오늘밤 최저 기온이 32도(0도)란다. 그러고보니 이른 아침 일터에서 만났던 달도 추워 보였다.

아무리 차고 기우는 것엔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하지만 그 수를 헤아리는 사람의 시간은 명확한 마침이 있어 서늘한 법.

달이 차고 기움을 느끼는 오늘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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