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늦은 나이에 시간에 쫓기며 산다. 아직 생업(生業)과 생활(生活)에 얽매어 있는 탓이다.
어느새 해 짧아진 일요일 저녁, 반주 한잔에 묵은 피로를 덜다 생각난 후배에게 전화를 넣었다. 못 본지 두 해는 족히 되었다. 후배라 하지만 이젠 다 같은 늙막에 맞먹어도 좋은 친구다.
“오, 정선생 살아 계셨나?” 내 인사에 돌아 온 후배의 답, “가실 때가 되셨나? 웬 선생? 아이 졸라… 씨…. 개밥 사러 나갔다가… 거의 쌀….”
나는 그의 다급한 소리에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걸려 온 그의 전화 목소리. “아따…하여간…. 그 새를 못 참고 전화를 끊다니… 내가 싸는 소리 좀 들으면 어때서!”
웃으며 던진 내 답. “얼마나 거룩한 일이냐? 누군가의 먹을거리를 위해 막장에 이른 배설의 아픔을 참는다는 일이… 마침내 그 아픔이 환희로 바뀌는 더할 나위 없는 그 거룩한 시간을 내가 차마 어찌 빼앗겠냐?”
그렇게 낄낄거리다 ‘해 바뀌기 전에 얼굴 함 보자’는 인사로 전화를 끊었다. 그 해가 언제인 줄은 서로가 모른 채.
곰곰 따지고 보니 무릇 모든 거룩함은 거룩한 곳에 있지 않는 듯도 하고…